나설 때와 물러설 때 알아야

전해져 내려오는 민화(民畵) 가운데는 문자도(文字圖)가 많이 보인다.
충(忠).신(信).예(禮).의(義).염(廉).치(恥) 등 사람이 지켜야 할 도리를 회화적으로 문자화한 그림이다.

소재는 새와 꽃.나무 등이 대부분인데 염(廉)과 치(恥)자 새김에는 다소 엉뚱하다 싶게 '게(蟹)가 자주 등장한다.
'염'은 청렴과 절제를 의미한다. '치'는 양심의 소리에 귀 기우려 의롭지 않는 행동을 스스로 부끄러워한다는 뜻이다.

염치(廉恥). 그렇다. 청렴을 지키지 못했을 때 부끄러워 할 줄 아는 마음이다.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이 바로 염치다.
그런데 이처럼 고상한 이미지에 왜 하필이면 어기적거리는 '게'를 등장 시켰을까.
옛 사람들은 게를 세상에 나설 때와 물러설 때를 잘 알아 처신하는 동물로 여겨왔다.

나설 때와 물러날 때를 가려 행동하고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될 일을 변별해 낼 줄 아는 것, 그래서 여기에서 벗어났을 때 "부끄러워하고 반성 할 줄 아는 사람이 돼야 한다"는 염치를 '게'에 견주어 교훈으로 삼아왔다는 것이다.

하잘 것 없는 미물인 '게의 처신'을 만물의 영장이라 할 수 있는 인간의 교훈으로 삼았다는 것은 아이로니컬 하다. 그래서 여간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어쩌랴, 게만도 못한 인간들이 넘쳐나는 세상인 것을. 이는 부끄러움을 넘어선 서글픔이다.

수치 모르는 지도층 행보

최근 제주사회에서도 '염치 논란'이 한창이다.
부끄러워 할 줄 모르는 지도층 인사의 정치적 야욕이 촉발한 것이다.

선거법 위반 혐의로 도지사직을 물러난 전직 지사가 자신의 휘하를 대리인으로 내세워 도지사 자리를 탈환(?) 한다는 황당무계한 소문은 제주도민을 한없이 우울하게 한다.
그렇지 않아도 지금 우리사회는 배신과 변절의 정치 담론에 식상해 있다.

그런데도 마땅히 자숙하고 반성해야 할 지도층 인사가 물러나자마자 '그림자 정치'니 '수렴청정'이니 '리모콘 정치'니 하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니 그의 정치적 야욕에 어안이 벙벙할 뿐이다.

특히 2년후에는 특사를 받고 공민권 박탈에서 벗어나 다시 도지사 선거에 출마하겠다는 야심찬(?) 그랜드 플랜을 세우고 있다니 이 무슨 해괴한 정치쇼인가.

소문이 사실이라면 이건 통치권을 우롱하는 짓이다. 도민을 업신여기고 우습게 여기는 오만방자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정치는 도덕이나 윤리와 거리가 멀다는 것은 이미 경험해 온 터였다.

"정치란 어차피 사람을 갖고 노는 게임이고 사람을 속이는 기술이며 거짓말쟁이들의 거짓말 시합"이라는 비아냥이 나온지도 오래다.

또 사회를 분열시키려하나

아무리 그렇더라도 거기에는 지켜야 할 최소한의 도리는 있어야 한다. 눈 곱 만큼의 양심이라도 걸어둬야 한다. 얼굴 붉히는 한 옹큼 겸손이라도 지어내야 옳다.
발가벗어도 발가벗겨도 수치심을 모른다면 정상일수가 없다. 틀림없이 맛이 갔다는 말을 들을 것이다.    

수치심을 잃어버린 사람이 무슨 짓인들 못 할 리 없다. 그래서 두려운 것이다.
수치심을 모르는 사회 지도층 인사가 사회전면에서 활개치는 것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사회를 더 혼탁 시킬 수 있다. 분열과 갈등의 불씨로 작용할지도 모른다.

"자신의 측근을 꼬드겨 정치적 한풀이의 재물로 삼으려 한다"는 사회 일각의 비판이 날을 세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그의 정치적 행보가 도민통합에 도움이 되지 않겠기 때문이다. 새로운 편가르기로 갈등을 부추기고 사회를 더 분열시킬 것이라 여겨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염치 모르는 밥 맛간 세력들의 조직적 음모와 책동에 의해 이번 '6.5 제주도사 선거'가 더렵혀지거나 제주도민의 순수한 민의가 왜곡된다면 제주의 미래는 참담해 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도층 인사들의 자중자애와 올바른 처신을 보고 싶다. 도민들은 어리석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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