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소포트제주 편집장     문     소     연

어버이날, 유치원 다니는 조카 녀석이 제 엄마 아빠에게 카드를 건넸다. 카드에는 “낳아주시고 길러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랑해요”라는 삐뚤빼뚤한 글씨가 ‘그려져’ 있었다. 유치원에서 선생님과 함께 만든 솜씨겠지만 동생부부는 감동어린 눈으로 카드를 들여다보았다.

고등학교에 다니는 아들을 둔 나는 핸드폰으로 “엄마, 카네이션을 대신해 문자 보냅니다. 언제나 마음 깊이 감사드리고 있어요. 사랑합니다”라는 문자를 받았다. 괜히 코끝이 찡해졌다.
3남4녀, 일곱이나 되는 자식들을 낳아 기르느라 ‘골다공증 걸린 부처’가 되어버린 어머니는 생전 처음 자식들 얼굴조차 구경 못한 어버이날을 보냈다.

“그래, 전화하면 됐지. 어버이날이 별 거냐? 시간 날 때 얼굴 보면 되지.”라며 전화로나마 여러 자식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으로 당신의 어버이날을 ‘기념’한 것이다.

언제부턴가 어머니는 자식들에게 “보고 싶다”는 말을 자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곱이나 되는 자식 가운데 그 누구도 어머니의 그 바람을 제대로 들어주지 못하고 있다. 외국으로, 서울로, 각 지방으로 뿔뿔이 다 흩어져 사는 데다 저마다 바쁘고 빡빡한 삶을 벗어나지 못한 탓을 변명으로 삼으며. 혹은 내심 일곱 중 누군가가 대신해주리라 미루어 믿으며.

아이가 하나밖에 없는 나는 일곱의 자식을 둔 어머니의 마음을 잘 헤아릴 수 없어 일곱 중 누구를 제일 사랑하는가를 물었던 적이 있다. 어머니는 “열 손가락 깨물어봐라. 안 아픈 손가락 있나”는 말로 대답을 대신했었다.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은 없지만 더 아픈 손가락은 분명히 있다. 어머니에게 더 아픈 손가락은 당신 기준으로 봤을 때 힘들게 사는 자식일 것이다. 어찌하다보니 나는 노상 어머니의 걱정을 달고 사는 가장 아픈 손가락이 되고 말았다. 그나마 덜 아픈 손가락이 되는 것도 마음대로 되지 않으니, ‘효도’는 점점 멀어져가는 숙제가 아닐 수 없다.

어머니는 어머니의 어머니를 참 지극정성으로 모시며 살았드랬다. 효도 대물림한다는데, 그것을 보고 자란 자식들이건만 어찌 된 일인지 흉내조차 내지 못하고 있으니, 이래저래 날마다 죄만 쌓고 있는 셈이다. 더구나 일곱 자식들 중 아무도 얼굴조차 보여주지 못한 어버이날이라니!

다음날, 어머니는 몸살을 앓고 있었다. 가뜩이나 죄스런 마음에 속이 더 복잡해져서 “엄마, 속상하고 섭섭해서 병나셨구나?” 부러 호들갑을 떨면서도 목이 메여오는 걸 감출 수가 없었다.

어머니는 ‘봉사활동’을 하러 다녀와서 그렇다고 했다. 그동안 자식들조차 모르게 독거노인 집이며 치매노인 요양소 등을 찾아가 말동무도 돼주고 목욕도 시켜주고 그래왔는데, 마침 시간이 많은(?) 어버이날을 맞게 되어 당신의 봉사활동에 의미를 보태느라 무리를 해버린 것이다. 어머니는 또 하나의 당신만의 어버이날을 보낸 것이다.

“엄마도 보호받아야 할 노인이에요. 골다공증까지 심한 양반이 그러다 큰일 날라고…”
뒷말을 잇지 못하는 내게 어머니는 꿈을 꾸듯 말했다.

“나는 보고 싶은 자식들이 많이 있으니 얼마나 행복한 사람이냐. 너희들이 있어 마음 놓고 아플 수라도 있으니 얼마나 복 받은 인생이냐. 너희들 말고도 아직도 내 손길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많으니 내가 살아있지 싶다.”

알고 보니 어머니와 함께 봉사활동을 나가는 노인들이 적지 않았다. ‘골다공증 걸린 부처’가 내 어머니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 어머니들을 둔 우리는 아직 행복한 세대인가.

앞으로, 솔직히 난 어머니 같은 어머니가 될 자신이 없다. 딸은 어머니를 닮는다는데, ‘골다공증’은 물려받을지도 모르겠지만 ‘부처’가 될 자신은 없는 것이다. ‘어머니’라는 이름만 대물림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염려라도 있으니, 아직은 깨달을 소지가 남아있는 세대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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