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6.25참전용사 송치선씨, “동족상잔 비극 다신 없어야”

 

“전사자는 늘어가는데 상부는 진격 지시만, 비통함이 앞을 가리더라고…”

62년전 6월의 여름. 치열했던 도솔산 전투를 떠올린 송치선(84. 대정읍 하모리) 옹은 그때의 기억에 목이 멨다.

제주에서 체신공무원으로 근무하던 송 옹이 21세의 나이로 해병대 3기에 자원입대한 것은 1950년 8월 5일. 6.25 한국전쟁이 발발한 지 50여일 만이었다.

25일간 초강도의 피 말리는 훈련을 거친 송 옹이 첫 투입된 전투지역은 통영 상륙작전. 이때부터 송 옹은 체신공무원 특기를 인정받아 무전통신기를 매고 중대-대대 통신병으로 활약하게 됐다.

그가 기억하는 한국전쟁 최대의 격전지는 인천상륙작전과 서울수복, 그리고 도솔산 전투였다.

“1950년 9월 15일 오후 3시, UN연합군으로 이뤄진 261척의 함대가 인천 앞바다에 도착했고, 오후 6시 상륙지시가 떨어졌다. 이미 연합군의 포격과 인민군의 방화로 인천 시가지는 불바다가 됐지만 산발적인 시가지 전투로 많은 동기들이 목숨을 잃었다”

곧바로 이어진 서울수복 전투는 송 옹에게 기억하기 싫은 과거였다.

14일에 걸쳐 이뤄진 서울 수복작전 당시 작전명은 ‘앞에 있음 쏴라’였다고 송 옹은 회고했다. 그는 “서대문 형무소를 지나가게 됐는데 어쩔 수 없이 수감자에게 총구를 겨눠야만 했고, 그 다음은…”이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한국전쟁 당시 3대 전투 중 하나로 꼽힐 정도로 치열했던 도솔산 지구 전투. 이 전투에서 송 옹은 전우의 시신을 밟고 진군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강원도 양구 해발 고도 1000m 이상에 위치한 도솔산은 폭우와 안개로 우리군과 적군이 낮과 밤을 번갈아가며 점령했던 치열했던 지역. 특히 바로 직전 미 해병5연대가 싸웠으나 손실만 입은 채 탈환에 실패했던 지역이기도 하다.

당시 한국해병 1대대장 통신병으로 있던 송 옹은 “수많은 해병들이 전사하고 팔·다리가 부러진 채 고지에서 내려왔고, 상부에 ‘전우들이 계속 죽어간다. 더 이상 진격은 불가능 하다’고 보고했지만 24시간 내에 고지를 점령하라는 명령만이 하달됐다”며 “전우의 시체를 밟고 넘어설 때 비통함에 눈물이 앞을 가리더라”며 회상했다.

현재 6.25참전유공자회제주도지부 감사로 활동중인 그는 “이 땅에 다시는 형제끼리 총구를 겨누는 동족상잔의 비극이 일어나서는 안된다”며 “국민들은 안보의식 함양을, 정부는 국방력을 튼튼히 유지하는 국가정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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