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 댓글사건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권은희 전 서울 수서경찰서 수사과장(현 송파경찰서 수사과장)이 '경찰 윗선이 수사를 축소했다'는 취지의 '소신 발언'을 한 데 대해 경찰 지휘부의 속내가 복잡하다.

사건 초반 수사팀 실무 책임자였던 권 전 과장은 지난 19일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해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이 작년 12월 12일 자신에게 전화해 국정원 댓글 사건 여직원 오피스텔 등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하지 말라고 지시했다고 진술해 관심을 샀다.

권 전 과장은 당일 자신에게 '격려 전화'를 했다는 김 전 청장의 주장이 "거짓말"이고, 지난 대선 사흘전 밤에 경찰이 중간 수사결과를 발표한 건 "대선에 영향을 미치려는 부정한 목적이었다"고 과감한 발언을 해 주위를 놀라게 하기도 했다.

이에 경찰 지휘부에선 권 전 과장의 일부 발언이 청문회에 출석한 공무원으로서 부적절했다며 내심 못마땅해하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경찰청의 한 고위 관계자는 22일 "증인으로서 자신이 아는 사실 관계만 말하면 될 텐데 개인적 주장까지 공개적으로 밝힌 것은 지나쳤다고 본다"며 "경찰 공무원이 정파성을 띤 것처럼 오해받을 소지가 있는 발언이었다"고 속내를 비쳤다.

그러나 관련 사건의 재판이 진행 중이고 워낙 큰 관심이 쏠린 사안이어서 재판부의 판단이 나오기 전엔 권 과장에 대한 조치를 검토하기란 부담스럽다는 것이 경찰 지휘부의 전반적인 기류다.

다른 경찰 간부는 "경찰도 이번 사건의 실체를 100% 파악했다고 단언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사법부의 최종 판단에 의존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그동안 경찰 지휘부가 문제 경찰관에 대해선 법원의 최종 판결 전이라도 신속한 인사조치를 해왔다는 점에 비춰볼 때 권 전 과장에 대한 조기 인사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또 다른 경찰 관계자는 "원칙대로라면 최종심 이후 입장을 정해야겠지만 최소한 1심 판결이 나오면 권은희 과장을 비롯한 관련자들에게 조치가 필요한지, 필요하다면 어떤 식이어야 할지 판단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1심에서 김용판 전 청장이 유죄 선고를 받는다면 권 전 과장에게 인사상 불이익을 줄 명분은 사라진다. 물론 최종심에서 법원 판단이 뒤바뀐다면 얘기는 달라질 수 있다.

이와는 달리 1심에서 김 전 청장에게 무죄가 선고되면 권 전 과장에 대한 인사 조치를 검토할 수 있다. 그러나 2심 또는 최종심에서 결과가 뒤집힌다면 경찰로선 또 한 차례 여론의 뭇매를 맞을 게 뻔해 이 역시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권 전 과장이 김 전 청장의 대선 개입 의혹 폭로와 청문회에서 소신발언으로 적지 않은 국민 지지를 받고 있다는 점도 경찰 지휘부 운신의 폭을 좁히고 있다.

한편, 경찰 지휘부는 경찰에 쏟아진 각종 의혹 중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다는 걸 청문회에서 비교적 무난하게 설명했다고 자평한 것으로 전해졌다. <연합뉴스>
저작권자 © 제주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