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향 리엔리웍샵대표.카피라이터
▲ 이재향 리엔리웍샵대표.카피라이터

아르카디아 왕국의 공주 아탈란타는 어찌나 아릿다운지 한번만 봐도 눈을 떼기 힘든 처녀였다.
게다가 뜀박질은 또 얼마나 잘 했던지, 요즘 말로 얼짱 몸짱 차원을 너머 누구도 겨룰 수 없는 재색겸비였다. 당연히 많은 청년들이 구혼을 하지만 한가지 조건이 있다.
그녀와의 달리기 시합에서 이기면 결혼, 그렇지 않으면 사형. 목숨을 담보해 이 시합에 나왔던 청년들의 목은 낙화처럼 떨어져 내렸다.

점점 지원자가 줄어가고 있던 중 어느 용감한 청년이 나타났으니 이름은 히포메네스. 물론 그 또한 죽을 각오를 하고 덤빈 거였다.
이때 용감한 자를 좋아하는 여신 아프로디테는 비밀 병기로 황금사과 세 알을 주면서 아탈란타에게 이길 수 있는 비책을 머라 머라 속삭여 주었다.

이윽고 경기에 출전한 히포메네스, 아니나 다를까 앞서 저만치 내빼는 아탈란타를 보면서 지레 절망스러웠으나 자신의 손에 들려있는 것을 사용할 기회를 엿보며 마음을 다잡는다.달리는 공주 앞에 황금사과를 던져 그녀의 주의를 분산시킨 용기청년 히포메네스는 결국 승리를 거둬 지존미인 아탈란타를 아내로 맞이하게 된다.

그리스 신화 중 한대목인 이 이야기에서 히포메네스를 보통의 우리 인간을 상징하며 아탈란타는 호락호락하지 않은 운명으로, 황금사과는 예술로 해석되기도 한다. 인간은 결코 운명을 이기지는 못하지만 예술의 힘으로 일시적인 승자의 느낌을 가질 수 있다는 것.

근자 제주에는 많은 변화가 일고 있다. <7대경관 선정> 쾌거로 엄청 놀랄 일을 기대 했지만 그 변화라는 건 이 곳에 걸음을 하는 이들에 의해 서서히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진행될 것이다. 그 중 두드러지는 것은 사람들의 교류로 문화와 예술에 대한 관심도라 하겠다.각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시 공연 등을 위시해서 일선 행정기관이나 문화센터마다 인문, 예술, 문화를 타이틀로 대중의식의 수면상태를 깨우느라 부산하다.

서두에 들려준 신화 스토리가 그러하듯 예술은 우리에게 삶의 무거움을 잊게 해 준다. 아니 아름다운 것을 대면하여 몰두하다 보면 현실로부터 잠시 잠시 벗어나게 해 준다. 이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다고 느끼고 누리기 위해서라도 좀더 힘을 내어 살아보리라…그런 위안과 격려를 우리는 예술로부터 얻는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예술이 해 주는 게 아니라 우리 각자가 그리 챙겨 가져가는 것이다.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섭지코지의 <지니어스 로사>를 비롯해 이타미 준(한국이름 유동룡)의 <방주교회>와 <포도호텔> 등의 건축물도 그런 맥락에서 좋은 모델이 되고 있다. 그런가 하면 벽에 걸린 작품 속에서도 제주 바람이 수런대는 사진작가 김영갑, 제주의 얼을 가장 천연스러이 그것답게 화폭에 담은 변시지 화백 등 위성시각을 가지고 본다면 지붕 없는 갤러리로서의 제주로 구석구석 보석 같은 예술섬이다. 보석을 가지고도 그 가치에 대한 긍지와 스스로 누릴 미학적 안목 없인 빈털털이 진배없다. 예술은 그것의 진가를 깊이 아는 사람의 몫이기 때문이다.

소위 <먹고 사는> 일에서 잠시라도 한눈 팔새 없이 살아온 이곳 할머니의 할머니들 덕분에 이제 그 걱정에서는 어느 정도 놓여난 자치섬 제주다. 잘 건사한 예술이야말로 밥벌이를, 그것도 많은 식솔 고급한 밥벌이를 수행하는 문화콘텐츠다. 스스로 귀하게 여겨 예술에 대한 안목을 맑고 깊게 닦아야 할 터이다.제주 행정의 문화예술 관심사에 대한 독려와 박차는 그런 면에서 시의 적절한 모색으로 읽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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