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산업정보대학장   이     용     길

제자 자공(子貢)이 스승인 공자(孔子)에게 물었다. 정치란 무엇입니까. “먹을 양식을 풍족케 하고(足食) 국방력을 튼튼히 하며(足兵) 백성들을 믿도록 하는 것(民信)이다.” 여기에서 부득이 하나를 버린다면 어느 것입니까.

“군비(軍備)를 빼라.” 나머지 둘 중에 하나를 없앤다면 어떤 것이 되겠습니까. “식량이다. 왜냐하면 사람은 언젠가는 죽을 터이니까. 그러나 백성들의 신뢰가 없으면 나라는 서지 못한다(民無信 不立).” 논어에 나오는 말이다. 믿음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우리 사회가 심각한 불신풍조에 휩싸여 있다.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한다. 심지어는 ‘콩으로 메주를 쑨다’해도 믿으려 들지 않는다. 이를 두고 사회학자들은 정치에 대한 불신이 사회적 불신으로, 이것이 다시 사회 구성원간의 불신으로 확산돼온 것이라고 분석한다.

정치에 있어 압제(壓制)만이 거의 전부였던 왕조시대와 이민족(異民族)에 의한 식민지배, 그리고 광복 이후 독재를 거치면서 우리의 전통적인 가치관이 붕괴되었고, 이로 인해 불신의 골은 더욱 깊어졌다는 것이다.

수도 서울을 사수(死守)하겠다며 시민을 안심시키고는 저들만 도망치다시피 남쪽으로 철수한 6.25당시의 이승만 정부, 민정으로 이양하고 원대복귀 하겠다던 5.16주체세력들,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눈물로 호소하며 3선을 하고 난 뒤에는 곧장 영구집권체제로 전환했던 박정희 정권의 행태(行態)는 가히 국민의 불신을 받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에 만연되고 있는 불신풍조가 역사적.정치적인 것으로만 치부해 버릴 수 있는 것인가. 물론 정치의 힘이 강력하기 때문에 국민에게 미치는 영향 또한 막강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 개개인에게도 문제는 있다.

남을 믿지 못하는 것은 자신을 믿지 않는 것과 같다고 한다. 결국 불신은 자신감의 결여에서 생긴다는 것이 전문가의 지적이다.

정치의 근본이라고 할 수 있는 신뢰(信賴), 서양에서 말하는 신용(信用)사회, 민법전에 나오는 신의(信義)성실의 원칙은 모두 믿음(信)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 믿을 신(信)자는 사람 인(人)과 말씀 언(言)자로 되어있다. 사람의 말은 믿을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믿음은 어느 시대 어느 사회를 막론하고 필요하다. 어떤 기업이나 단체에도 반드시 있어야 한다. 상사(上司)가 부하를 신뢰하고 하급자가 상급자를 믿을 수 있어야만 그 조직은 원만하게 운영될 수 있는 것이다. 사제(師弟)간도 마찬가지이다.

스승과 제자가 서로 믿고 아낄 때 비로소 진정한 교육은 이루어 진다. 믿음은 굳은 결속(結束)을 낳고, 결속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신념과 능력을 길러준다. 그래서 신뢰는 가장 큰 사회적 자본이라고도 한다.

이처럼 신뢰는 귀중한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믿으면 이익이 온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도록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해 나가야 한다. 우선 정치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미풍양속이 꾸준하게 계승되고 있다는 우리 제주도에서조차 불신(不信)의 바람은 어김없이 불어오고 있다.

비근한 예(例)로 보궐선거.재선거가 이를 입증해 주고있다. 이번 선거에서는 허황된 공약(空約)이 아닌 믿을 수 있고 실천할 수 있는 공약(公約)을 제시해야 하며, 중상모략이나 인신공격 대신에 미래지향적 정책을 가지고 대결하여야 한다.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의 일원으로서, 서로 믿고 양보하는 미덕을 다시금 일으켜 세워야 한다. 비단 정치에서뿐만 아니라, 경제.사회.문화.교육 등 모든 분야에서 신뢰가 회복되어야 한다. 이것만이 공생(共生)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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