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향-리엔리웍샵 대표.카피라이터
▲ 이재향-리엔리웍샵 대표.카피라이터

 
어렸을 때 어른들이 마시는 커피의 향은 여간 고혹적인 게 아니었다. 매양 장난끼 반들대는 막내고모는 겨드랑이에 털 난 사람들이나 마시는 거라며 어린 내 앞에선 커피란 흡사 최음제만큼이나 비밀하며 악마적인 금단의 가루로 다루었다.  나는 갈망했다, 내게 금지된 것을! 말리는 강도만큼 끌림도 강하게 부풀던 어느 날, 어른들이 없는 틈을 타 커피와 몰래 조우하게 되었다. 곱다란 커피가루를 푸짐하게 한 숟가락 입안에 털어 넣은 나의 방자放恣는 곧바로 천벌 비슷한 것을 받았다. 혓바닥 미각점에 고루 퍼지기도 전에 진저리를 치면서 흡사 독약을 토하듯 몸을 뒤틀며 진땀을 뺐다. 그리고 나서의 그 허탈함과 배신감이라니...그건 분명 배신감이었다. 커피라는 물건이 본디 저런 폭력을 내포하고도 그토록 아늑한 매혹이었던가. 젖을 떼느라고 엄마 젖에 발랐다는 깅게랍보다 쓰고 유리가루보다 날카로웠다.
 
시절이 좋아져서 어느 적엔 황실에서나 누렸을 법한 호사수준의 커피를 맘만 먹으면 맛볼 수 있게 되었지만 아직도 난 당시 어른들이 마시던 그 황홀한 맛의 비밀, 즉 설탕과 크림과 커피의 황금배합, 그 팽팽한 긴장의 접점을 알지 못한다. 다만, 그 배신감에 떨었던 경험이 문신처럼 남았다가 사는 동안 마주치는 관계의 위기에 벌떡 살아 일어나 짱짱한 싸인을 준다. 정작 배신은 커피가 아니라 바로 나, 나의 무지였음을 일깨워 준다.
 
물질가치가 황제 급으로 등극한 오늘날엔 행복도 불행도 타인에서 배달된다. 남이 가진 가치를 기준하여 비교우월 아니면 비교열등으로 행불행이 갈리고 이렇듯 남이 나의 주인행세를 하다 보니 희로애락 조차도 나의 내면이 아닌 밖에서 생기는 것으로 오인하고 산다. 커피에 대한 어린 나의 배신감이 그러했듯이 주변을 가만히 살펴보면 자칭 배신자는 없고 그저 배신 당한 사람만 있는 시대다.
 
사는 동안 인간관계로 인한 아픈 경험은 누구나 있을 터이다. 나 또한 차마 그럴 줄 몰랐던 사람이 예상을 깨고 섭섭하게 매듭을 지은 경우가 없지 않다. 그러나 다시 보면 차마 몰랐던 그 자체가 나의 오류인 거다. 우리 모두 각자에겐 타인을, 심지어 자기 자신을 실망시킬 요소가 얼마든지 있다. 과장하자면 스스로에게 배신당하는 상황도 있는 것이다. 이러리라 마음먹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바뀌어 저러고 싶어지는, 그 가만있지 않음이 우리 삶의 토대 아닌가. 내게 온 인연 또한 나의 시선과 성품, 대응에 있어서의 온기며... 나에게도 저런 구석이 있을 터인데… 그럴 수 있겠지… 그저좀 봐주는 마음
 기타 요소들과의 배합 혹은 화학작용의 문제다.
 
인간수명 100세 운운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예순까지 건재한 것이 장하고 장해서 잔치를 해주던 세월이 불과 두 세대 전인데 이제는 환갑 애들에게 무슨 잔치냐 하는 우스개 소리를 듣는다. 이 장기공연 무대에서 잘산다(Wellbeing)는 것은 삶의 관리 또는 경영을 잘 하는 일의 다른 말이다. 감정경영, 건강경영, 물질과 재정의 안배 못지않게 관계경영도 중요하다. 혹여 사람으로 인한 서운함이나 노여움이 생긴다면 나와의 배합을 다시 점검할 일이다. 짧기도 하고 길기도 한 생의 무대에서 어느 인연이든 내면과의 좋은 배합으로 맘 평화롭게 세상과 푸근하게 친하다 갔으면…. 그럴 수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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