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후-시인/소설가
▲ 김관후-시인/소설가

 

시인 기형도(1960∼1989)는 그의 시 「비가 2」에서 “살아 있으라, 누구든 살아 있으라.”고 노래하였다. “살아 있으라”는 말은 우리 곁에, 우리들 모두의 기억 속에 죽어가는 자들이 살아 숨쉬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렇지만 기형도는 자살을 택했다.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기형도 시인의 한 심야극장에서 새벽에 숨진 채로 발견된 것은 1989년 3월 7일의 일이다.

 ‘베르테르 효과’라는 것이 있다. 괴테의 작품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유래된 모방자살을 설명할 때 쓰이는 용어다. 주인공 베르테르를 모방한 당시의 권총자살이 유행이었던 것처럼 연예인이나 사회 유명인사 자살 이후에 모방 자살이 나타나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베르테르 효과를 차단할 수 있을까? 베르테르 효과를 차단하는 것은 자살자의 유가족이나 친지들이 자살자에 대한 사실과 유서 등을 공개함으로써 타인에게 미칠 영향을 미리 차단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하루 평균 43.6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33분 만에 한 명꼴이다. 노인이나 중장년층이 훨씬 많다. 그렇지만 20~30대는 물론 10대 청소년층에까지 확산되고 있다. ‘한국은 자살 공화국이다’는 오명을 씌워도 변명조차 하기 힘들게 되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서는 자살률이 가장 높다. 그럼 제주도는 어떻게 나타났는가? 서귀포시가 제주시보다 자살률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서귀포가 33.4명으로, 제주시가 29.3명으로 나타났다. 평균 30.2명이다.

1935년 헝가리에서 발표된 ‘글루미 선데이(Gloomy Sunday·우울한 일요일)’ 레코드로 발매된 당시 8주 만에 이 노래를 듣고 187명이 자살했다. 한 여인을 사랑한 세 남자의 비극을 담은 노래는 영화로 만들어졌다. ‘자살 교향곡’으로 불린 이 노래를 작곡한 천재 작곡가 레죠 세레스, 그도 역시 이 노래를 들으며 고층빌딩에서 몸을 던져서 죽고 말았다.

한국에서는 여러 형태의 자살예방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다. 그리고 자살에 대한 사례분석 통계를 통해서 자살 동기 및 원인이 여러 가지로 분석되고 있다. 경제적 궁핍, 신병비관, 성적비관 등등으로 자살한다는 다양한 원인이 분석되었지만,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삶의 의미를 잃어버렸기 때문인 것이다. 국회에서는 자살예방관련 법률을 시행하였고 이와 관련된 움직임들이 구체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제주대학교병원이 ‘응급실 기반 자살시도자 사후관리사업’ 수행기관으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자살 시도자가 응급실에 후송되면 응급의학과에서 자살시도를 확인하고 의학적 평가를 진행한다. 자살예방정책은 건강한 사회를 만들어 가는 큰 국가적 정책이다. 사람은 자신이 살아가는 존재의 이유를 깨달아야 한다.

기형도 시를 죽음 의식이나 절망 의식이라는 괄호 속에 묶어둘 것이 아니다. 그 처절한 모색을 사회적 고통과 사회적 맥락에서 읽어내는 보다 건전한 비평이 요구된다. 기형도의 죽음은 1990년대에 제기된 '문학의 죽음'이라는 비관적 전망과 맞물려 일파만파로 전파되었다. 하지만 우리를 죽음의 방향으로 끌어당긴 90년대가 지나갔다. 기형도를 '글루미 선데이'의 염세적 우울속에 방치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기형도를 죽음의 신화에서 건져내 현재형의 시인으로 만드는 작업은 과연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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