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춘( NH농협은행 제주영업본부 차장)
▲ 윤재춘( NH농협은행 제주영업본부 차장)

시간이 참 빠르다고들 말한다. 요즘 시간보다 빠른 게 가계 빚 이다. 빨라도 너무 빠른 게 문제다. 가계 빚은 9년 만에 배 이상 불어나 지난해 말 공식적으로 1000조원 시대를 맞았다. 한국경제의 ‘시한폭탄’으로 불리는 가계 빚의 문제는 가계의 상환 능력이 떨어지고 있는 것과 가계 빚의 질(質)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는데 있다.
개인이나 정부나 한 번 빚더미에 오르면 쉽게 빚의 늪에 빠져 나오기가 쉽지 않다. 가계의 빚 갚을 능력은 갈수록 악화돼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 부채비율이 2008년에는 150%였으나 작년말에는 164%로 높아졌다. 번 돈을 1년 반 이상 아무 곳에도 쓰지 않고 빚 갚는 데만 사용해야 모두 상환할 수 있는 어마어마 한 규모가 됐다. 소득으로 감당하기 버거운 수준까지 늘어난 것이다. 빚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린다는 말이 지나치지 않을 정도다. 선진국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135%보다 30%포인트 가까이 높아 가계와 한국경제의 ‘핵심 뇌관’ 가운데 하나가 돼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가계 빚의 가장 큰 문제는 은행보다 금리가 비싼 2금융권 대출이 크게 불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3년 사이 급속도 증가하여 가계 빚 전체 절반을 넘어 2금융권 대출이 은행 대출을 앞질렀다. 이는 은행 문턱을 넘어서지 못해 저축은행이나 캐피탈, 대부업체를 찾아 고금리 대출을 받아쓰는 취약 계층이 늘어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쓸 곳은 많은데 소득은 늘지 않자 결국 빚을 내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자영업자의 가계 빚이다. 개인소득 대비 자영업자 소득은 큰 폭으로 줄어들어 연체율이 높아짐에 따라 자칫하면 자영업자 가계부도 대란이 올 수 있는 상황이다. 더는 방치할 수 없을 정도로 위험수위에 이른 셈이다.
가계 빚이 이렇게 급증한 것은 지속된 경기침체의 영향으로 소득이 줄어든 탓도 있지만 빚 권하는 사회적 분위기도 문제다. 지난 10년간 서민들에게 빚은 일상이 됐다. 대출은 일종의 재테크였다. 대출을 받아 자산을 사놓으면 대출이자보다 자산가격 상승분이 더 큰 식이었다. 이에 따라 가계대출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가계대출의 증가는 ‘버블 시대’를 이끌었다. 부동산 버블, 사교육 버블, 명품 버블 등 가계소비 구석구석에 가계대출의 어두운 그림자도 함께 공존했던 것이다.
가계 빚 1000조원 시대. 획기적인 처방을 찾기는 어려운 일이다. 근본대책은 일자리 늘리고, 가계소득을 높여주는 것이지만 이는 전체 경제성장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쉽지 않다. 그럼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
정책당국은 가계부채의 증가율을 적정 수준에서 관리하는 정책과 빚을 갚을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는 특단의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개인은 가계 빚을 관리하고 갚아야 할 주체이다. 내가 진 빚을 그 누가 대신 갚아 주지는 않는다. 허리띠를 졸라매면서 소비를 대폭 줄여 부채를 우선적으로 갚아 나가야 한다. 가지고 있는 자산 중 일부 또는 전부를 처분해 갚아야 한다. 중요한 것은 추가적인 부채를 일으키지 않거나 최소화 하는 것이 중요하다.                        
옛말에 ‘돈은 앉아서 주고 서서 받는다’ 고 했다. 은행권도 과도하게 가계 대출을 줄여나가지 않아야 한다. 은행권이 대출을 조이면 돈을 빌릴 수 없게 된 사람들이 금리가 크게 높은 비은행권이나 대부 업체 또는 사채로 몰릴 수 있다. 또한 은행권은 가계대출의 부실 예방을 위해서라도 저소득, 고령층, 다중채무자 등 취약계층들의 부채의 늪에서 빠져 나올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 도입과 성실한 대출고객에 대한 인센티브제도를 적극적으로 도입해야 한다. ‘가계 빚 1000조원’모두에게 리스크다. 리스크는 피하는 게 아니라 관리의 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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