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옥자(수필가)
▲ 공옥자(수필가)

    미국의 어느 대학에서 경제학 교수가 실험을 했습니다.
학생들이 학기 초에  오바마의 복지 정책을 지지 하며 어느 누구도 지나치게 부유하거나 지나치게 가난해서는 안 되고 평등한 부를 누릴 수 있어야한다고 주장했기 때문이지요. 일견 옳은 주장 같아 보입니다. 그래서 교수가 이번 학기에는 수강생 전원이 클래스 평균점수로 각자의 점수를 받으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했어요. 학생들은 동의 했고 수업을 진행하며 첫 시험을 보았는데 평균 점수는 B학점이 되었습니다. 공부를 열심히 했던 학생들은 불평했고 놀던 학생들은 좋아 했지요. 그 다음 시험엔 전체 D학점, 공부하던 학생들도 해 보았자 소용이 없으니까 공부 안했고 놀 던 놈들은 계속 놀았으니까 평균점수가 떨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학생들은 학점에 불만이었지만  누구도 공부해서 전체 학급점수를 올리려고 노력하지 않았습니다. 세 번째 시험에선 모두 F학점, 다들 공부하지 않았으니까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그 때 서야 교수가 설명했어요.
“보상이 있을 때 사람들은 노력하지만 열심히 일한 사람들의 몫을 일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이런 종류의 복지 정책은 나라가 망하게 되어 있다”

  한 비행기 여승무원이 일등석 손님들의 행동과 습관을 관찰하여 책을 펴냈습니다.
그들은 대부분 자신의 필기구를 가지고  항상 메모하며  전기나 역사책을 읽고, 자세가 바르고, 시선의 각도가 높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경청 할 뿐 아니라 승무원에게 고자세를 취하지 않고, 주변 승객에게 관심을 표하고 아내를 극진하게 모신다. 대충 이런 습성이 일등석 손님의 특징이라고 짚어 냈어요. 모두 긍정적 태도입니다. 성공한 사람은 남다른 데가 있다. 성공할만한 자세나 인품이 깃들어있다. 이런 정보를 새삼 확인해주고 있습니다.
 아무나 인생에서 높이 오를 수 없다는 걸 모르지 않습니다. 운이 좋아서라거나 배경이 튼튼하다거나 줄을 잘 서서라거나 하는 식의 말은 본인의 열정과 노력, 남모르는 눈물과 의지 같은 것을 평가하지 않으려는 편견입니다. 대다수의 보통 사람들은 상위층 사람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없는 것이 자신의 책임이라고 인정하지 않습니다. 불공평한 사회제도나 잘 못된 특혜라고 생각합니다.
 흔히 보게 되는 길거리의 현수막에는 근로자에 대한 입장을 호소하는 그럴듯한 문구가 자주 눈에 뜨입니다. 착취당하는 억울함이 심금을 울립니다. 그러나 그 원인이 모두 기업주에게 있다고 항변을 일삼는 건 생각해 볼 일입니다. 악덕 기업주는 분명히 있습니다. 그래도 모두가 그렇지는 않으며 근로자들이 다리 펴고 자는 동안도 잠 못 들어 고민하는 양심적이고 성실한 업주들도 많습니다.
 인생에서 모든 불행의 원인이 타인에게만 있고 자신은 아무 잘못도 없다는 식의 생각이 옳은 걸까요? 어느 경우 분명히 누구 탓으로 손해나 피해를 입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일도 멀리 짚어 보면 내 불찰이 개입되어 불행을 자초했다는 깨달음이 올 때가 많습니다. 자연 재해까지도 천재 뿐 아니라 인재였음을  밝히는 경우를 봅니다. 어느 한쪽은 철저히 악하고 다른 한쪽은 철저히 선량한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요.  평등이란 기회일 뿐 능력의 평등이 아닙니다. 인간은 잉태의 순간에 이미 차별적 존재입니다.
 우리에게는 누구든 남이 아니라 자신이 져야할 의무나 책임이 있습니다. 책임과 의무는 실종되고 권리만 챙기는 사회가 어디로 갈지 생각해 보셨나요? F학점의 사회는 누구도 바라지 않겠지만 민심을 얻으려는 달콤한 약속의 종착역이 어디인지 냉철하게 질문해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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