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일(시인.제주 세계자연유산 해설사)
▲ 최창일(시인.제주 세계자연유산 해설사)

  계절은 순환되며 어김없이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키면서 세상을 바꿔 놓고 있다. 봄은 우리 곁에 청춘 남녀가 사랑을 나누듯 찰떡처럼 찰싹 달라붙었다. 변덕스런 날씨 때문인가? 햇살이 가득하면 돌담 사이로 돌아 나오는 미풍의 속살거림이 여간 아니다. 초봄의 향기와 청정한 공기가 살랑대는 바람결에 오장으로 깊숙이 스며든다. 찰나의 순간에 떡잎 같은 구름 한 장 가리면 콧잔등이 시큼하다. 그래도 오는 봄 길을 막아설 수 없어, 언제 그랬느냐는 듯 한풀 고개를 떨군 모습도 보인다.
 계절이 징검다리를 오가 듯 흐르는 계절이 내 곁을 스치고 있다. 그 틈을 비집고 때는 이때라고 기회를 놓칠까 봐, 시나브로 고즈넉한 고샅길을 걷다 보면 길섶에는 이름 모를 들풀들이 파릇파릇 앙증맞게 새싹을 터트리고 있다. 일찍 개화한 매화와 수선화 목련꽃보다 곱고 애잔하게 가슴에 다가 와 새록새록 기운이 샘솟는 것 같다.
 만장굴 곶자왈 숲길을 걷다 보면 산새들이 봄의 노래를 합주곡으로 들려준다. 제주 휘파람새가 봄의 영혼을 담아 누군가를 애타게 부르는 모습이 애처롭고, 숲을 쨍쨍 울리는 오색딱다구리 소리가 예사롭지 않다.
 나는 봄날에 묻고 싶다. 봄날을 누구와 함께 보낼지, 얼마나 많은 사랑을 나눠야 하는지를? 봄날의 환영은 그리움과 미움이 뒤섞였는지 미혹에 현혹된 채 너무 쉽게 와서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사라져 버릴 것 같은 아쉬움이 겹치기도 한다.
 설빔을 한 지가 어제 같은데, 개구리도 긴 잠에서 깨어난다는 경첩이 와버렸다. 만장굴에서 동면하던 붉은 박쥐(황금박쥐), 관박쥐, 긴날개박쥐 3만 마리도 봄기운에 어디로 가서 노는 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동면에 취해 꿈적 안던 흙이 꿈틀거리고 지렁이와 두더지도 꿈틀거리고 나뭇가지에 아린 싹이 돋아나며 생동하는 모습들이다.
 춘래불사춘이라고 했던가. 봄은 왔지만 봄 같아 보이질 않는다. 계절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게 만만치 않다. 바쁜 일상 속에서 젠 발품을 팔면서도 따라잡을 수 없는 삶의 속도를 봄바람처럼 슬쩍 비켜서서 숨 고르기를 하고 싶다. 짠한 마음이 봄볕처럼 삶에 대한 희망과 의욕으로 유년의 순수성을 찾아낼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래서 불가에서는 ‘지금 네가 선 자리를 꽃방으로 만들라’고 한 것 같다. 과거도 미래도 생각지 말고 새로운 봄만 들여다보자.
 자연은 늘 새롭게 변모하면서 많은 선물을 인간에게 가져다준다. 인간은 자연의 혜택에 힘입어 삶의 에너지를 충전하며 살아가고 있다.
 자연은 신(神)이 쓴 위대한 교과서라고 했다. 한 포기의 꽃 속에 신비가 깃들어 있고 한 마리의 이름도 없는 벌레 속에서 경이가 배어 있다. 그리고 한 알의 모래에서 세계를 보고, 한 송이 들꽃에서 천국을 본다고 했다. 산새들의 울음소리에 꽃이 피고 허공에서 춤사위를 벌리는 나비를 보면서 대자연의 서사시를 감상한다. 말(言)만 늘어놓아도 경이로운 무릉도원이다.
 봄의 상징은 생명과 희망, 환희라고 표현하는 것 같다. 봄을 시샘하는 꽃샘추위에 떨면서도 살아내기를 꿈꾸는 새 생명의 힘은 가냘프면서도 신비하게 세상을 바꿔 놓듯이, 자연을 거울삼아 살아가는 것도 삶의 지혜이리라 생각된다. 우리의 삶에도 봄의 가져다 준 용기와 양수처럼 모두를 내어놓는 유희를 구가해 봄은 어떨까하고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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