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자(세이레어린이극장 대표)
▲ 정민자(세이레어린이극장 대표)

 

어릴 때부터 편식이 유달리 심했던 나는 아직도 고치지 못하고 편식을 한다. 한동안 학원을 하며 유아들을 가르칠 때가 있었다. 꽤 재미도 있었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게 적성에도 맞아 20년 넘게 하면서 가장 심적 부담이 있었던 게 편식하지 말라고 가르칠 때였다. 당근, 토마토, 우유제품, 콩 제품도 잘 안 먹는 나로서는 아이들에게 편식하지 말라는 말을 자신 있게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솔직하게 선생님은 안 먹는다, 그래서 키도 안 컸다면서 너희들은 음식을 골고루 잘 먹어야 키도 크고 예뻐진다며 가르쳤었다. 이 나이가 되도록 편식도 안 고치고, 먹는 것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던 나로서는 혼자 먹는 것이 너무도 싫었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혼자 식당에 들어가 끼니를 때우지 않는다. 오죽해야 배고픔을 없애주고 영양까지 제공하는 알약이나 나왔으면 좋겠다 했을까? 

사람들 말을 들어보면 나만 그런 건 아니다. 다들 혼자 먹는 밥을 꺼린다. 사람들은 함께 밥 먹는 동물로 진화했기 때문 아닐까. 인류가 출현한 이래로 인간은 그렇게 살아왔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먹기 위해서 산다, 같이 밥을 먹어야 정이 붙는다, 맛있는 음식 찾아다니면서 먹는 게 취미다 등등 말을 하겠는가. 하도 안 먹는 내게 후배가 그런다. “어떤 음식이 제일 맛있어요?” 나도 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둘러앉아 두런두런 이야기 나누며 먹는 밥이 제일 맛있다는 걸. 음식을 잘하거나 특별히 좋아하지 않지만 그래도 가족들을 위해 밥을 지을 때나, 사랑하는 가족이 내가 지은 밥을 맛있게 먹는 걸 볼 때, 밥 안 먹어도 배가 부르고 그 어떤 것보다도 뿌듯하고 기쁘다. 밥은 사랑이니까. 관심이니까, 내 마음을 보여주는 것이니까, 밥은 단지 허기를 지우는 일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난 4월 한 달 동안 밥이라는 연극을 공연했다. 치매에 걸린 신부와 평생 시집도 안 가고 그 신부를 위해 밥을 지었던 식복사의 이야기다. 작품을 연출하면서 밥을 먹는 다는 것이, 단지 생명을 연장하기위한 것이 아니라 사랑을 나누는 거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신부와 식복사의 가슴 뭉클한 사랑이 어쩌면 각박하고 극단적인 이기주의로 가득 찬 이 사회에 꼭 필요한 메시지인 것 같았다. 밥을 해서 같이 먹는다는 것은 사랑을 키우는 것이다. 식복사는 정성과 사랑으로 밥을 짓고, 그 정성을 알기에 맛있게 신부는 먹어주고...식복사에게 신부는 뭘까? 남편? 오빠, 아버지? 아니다, 남녀사이가 아닌 인간으로서 서로 아끼고 격려하고 위해주는 사이다, 그런데 주변에서는 의심스런 눈빛으로 바라보고 입방아들을 찧는다. 소문은 재미있다. 소문은 비밀이니 스릴과 남들이 모르는 일을 내가 알고 있다는 묘한 느낌까지, 특별한 재미가 있다. 허나 당사자인 누군가에게는 아픔이요, 두려움이 된다. 숨고 싶을 만큼. 그런 현실에 이처럼 누구에게 보여주는 사랑이 아닌 순결하고 특별한 사랑이야기를 보여주고 싶었다. 다행히 매 공연마다 관객은 우리가 상상한 것 이상으로 감동하고 눈물을 보여주셨다. 

가정의 달이다. 도란도란 사랑하는 사람들과 맛있는 밥 드셔보시길.. 특별한 사랑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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