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영환(제주지역사회교육협의회 부회장)
아침 출근길, 등교하는 고1아들을 태운다. 하루 중 아들과 함께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다. 룸미러를 통해 아들을 본다. 눈을 감고 이어폰을 낀 채 음악을 듣고 있다. ‘친구들하고 잘 지내?’ 말을 걸어보고 싶지만 혼잣말의 공허한 메아리일 뿐 침묵이 자연스럽다. 아들의 표정을 살핀다. 고민이 있는 건 아닌지? 컨디션은 좋은가? 아들과 다정다감한 시간으로 만들고 싶고 해주고 싶은 말도 많건만 공부에 지친 아들의 휴식시간을 뺏는듯해 말을 걸기가 쉽지 않다. 스스로 이어폰을 빼고 아빠에게 말을 걸어주기를 기다릴 뿐이다.
부모가 돼 입시경쟁에 남들처럼 잘 해주지 못했기에, 등굣길 운전기사라도 해줄 수 있음이 큰 위안이 된다. 어느 날인가 아내가 하는 말이 고3수험생이 있으면 부모도 똑같은 수험생이 돼 뒷바라지를 한다고 하는데 우린 고3수험생을 두 번이나 겪으면서도 입시제도에 대해 아는 것도 없고 아무것도 해주는 것이 없으니 아침밥이라도 잘 챙겨 먹이고, 학교통학이라도 도와줘야 나중에 원망이라도 덜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스스로 잘해낼 것이라 믿어서’라고 변명해보지만 듣고 보니 부모로서의 게으름에 대한 핑계였단 생각에 가슴 한편이 찔린다.
치열한 입시경쟁에서 도대체 난 뭘 믿고 그랬지? 내 삶의 큰 의미이자 자랑스럽고 든든한 나의 아들. 남의 손에서 키울 수 없다는 생각에 서울생활을 청산하고 귀향을 결정하게 한 아들. 녀석의 백일 기념사진을 찾아 들고 오면서 전철 안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보여주며 자랑했던 아들인데. 무심했던 아빠엄마를 만난 덕분에 힘든 고교생활을 보내며 원망하고 있지는 않은지 걱정되고 미안해진다.
그러나 아들! 아빠는 확신한다. 지금 네가 겪고 있는 치열한 경쟁이 꼭 이겨야할 만큼 가치 있는 경쟁이 결코 아니라는 것을. 삶은 끊임없는 배움의 과정이고 세상은 도전의 연속이요 공부를 잘 하든 못 하든, 어떤 대학을 가든 중요한 건 진정한 삶의 의미와 행복을 느낄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이라는 것을.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 자기역할을 찾아내고 타인을 배려하는 삶을 살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 평소에 삶 속에서 모든 걸 보여주신 할아버지만큼 좋은 아빠가 돼주지 못해서 조금 찔리긴 하지만 아빠는 그간의 너의 인성을 믿기에 걱정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간 수능성적에 따라 대학을 서열화하고, 상위권 대학을 졸업해서 전문직을 갖게 되거나 대기업에 취직할 수 있을 거라 여기며 정신적, 물질적 자원을 대학입시에 쏟아 부어왔지만 이제는 전 세계가 함께 겪는 장기적인 경기침체, 청년실업으로 그마져도 어렵다. 더욱이 학벌이 업무능력이나 성과로 이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인식하에 기업의 채용방식도 바뀌면서 취업공장으로서의 대학의 역할도 종말이 보이는 듯하다.
‘홍익인간’의 교육이념과 ‘전인교육’ 실현이 사문화되고 입시경쟁 위주로 변질된 우리의 주입식 교육시스템도 이제는 바뀌어야할 때다. 아무리 좋은 교육정책을 내놔도 모든 걸 대학입시로 귀결시켜버리는 부모들의 생각도 바뀌어야한다.
틀에 박힌 교육시스템으로 키워진 ‘온실형 인재’가 아니라, 스스로 새로운 부가가치를 찾아내거나 상품을 개발해 창업할 수 있는 인재, 문화콘텐츠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인재, 사물을 비판적 시각으로 볼 줄 알고 상상하고 재구성하는 능력을 가진 ‘야생형 인재’로 키워야 한다. 
  오늘도 많은 생각이 교차하며 ‘무슨 말을 어떻게 해줘야 할까?’ 머리가 복잡해지지만 차에서 내리는 아들에게 나는 겨우 한마디 할 뿐이다. “아들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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