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주특별자치도의회 부의장 박규헌
제주시 애월읍 고성리 중산간을 지날 때 쯤이면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396호 제주항파두리 항몽유적지’라는 이정표와 함께 천연자연림으로 숲을 이룬 능선이 시선을 멈추게 한다. 그리고 도로변을 중심으로 보이는 ‘구시물’ ‘장수물’ ‘옹성물’ 등은 당시 삼별초의 활동을 고스란히 품고 설화로 전해주고 있다.  

700여년전 국가 흥망성쇠를 같이 한 역사의 보루였던 항파두리는 고려시대 역사상 중요 사건의 하나로서 많은 국민이 알고 있는 몇 안되는 유적 가운데 하나다. 또한 우리 영토내에서 여러 차례의 전쟁이 있었지만 제주도를 항쟁의 거점지로 활용되었던 유일한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이런 중요한 역사 현장은 1977년 일부 토성복원, 항몽순의비 건립을 통해 국가적 위상의 유적으로 재평가 되었다. 이후 1990년대까지만 해도 수학여행을 비롯한 모든 여행객들이 가야만 하는 필수코스였다. 그러나 어느 때부터인가 신성하고, 조국애를 전해주던 유적이 여행객들의 외면과 마을의 애물단지가 되었고, 문화재라는 이유로 토지이용규제의 제1대상이 돼 버렸다.

왜 그럴까. 아마도 문화관광의 SOC라고 할 수 있는 문화재가 제대로 그 역할을 못하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항몽유적에 대해서는 마을유산이 아닌 제주대표 사적지로 그 위상을 더욱 내세울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업 추진은 미흡한 실정이다. 이미 2차례에 걸친 복원정비 활용계획이 있었지만 문화재 지정구역의 52%가 사유지인데다가, 그 사유지의 48%만이 토지매입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최근에야 토성복원과 발굴조사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그 외에는 전혀 항몽 유적지에 대한 그 어떤 복원 활용 실행계획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지역주민들과 뜻있는 도민들을 더 애타게 하고 있을 따름이다.  문화유산 활용에 대한 세계적인 추세는 복원과정을 그대로 관광, 학습자원으로 프로그램화 한다는 것이다. 세계적인 관광지이며, 세계유산 로고의 모델인 유네스코 고적 1호 파르테논 신전은 지금도 그 원형을 복원하기 위해 50여년째 보수하고 있으며, 관람객들은 유물이 흩어진 그 현장을 그대로 보고 교육 받고 오고 있다.

완전히 복원될 때까지 발굴 중이라 해서, 복원 중이라고 해서 공간을 폐쇄하는 것이 아니다. 학생들에게 일반인들에게 어떻게 복원되는지, 과거 사람들은 어떻게 생활했는지 생생하게 보여주는 학습현장으로 만들어야 할 행정의 의지가 요구되는 대목이다. 

민선 4기, 5기, 6기 모두 문화정체성 확보를 위해 향토유산 보호활용에 대한 도정운영 방침을 제시해왔지만, 가장 제주적인 것을 상징할 수 있는 중요 유산에 대해 자원화를 위한 발 빠른 행보는 전혀 보여주고 있지 못하고 있다. 이런 현실은 오리려 문화유산이 지역주민들에게는 골치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백범 김구 선생의 ‘백범일지’에 부록된 ‘나의 소원’에 적힌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 라는 글귀처럼 문화를 모든 국가정책의 기본이 되어야 한다는 대목을 보면 그 원형을 어디서 찾아야 하는지 정책적 고민이 필요한 때다. 

그러나 자본이 점령한 세상에서 문화정치로 인도해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공감하면서도 경제논리에 의해 형편없이 부서지고 훼손되고 있는 현실은 정말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제주도정이 문화정책을 다시 한번 재점검할 것을 주문한다. 더불어 항몽유적지와 같은 시대적 대표성을 갖는 문화유산에 대해선 문화행정의 중심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강구할 것을 요구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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