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주지역사회교육협의회 부회장 김영환
고요한 가을 밤하늘에 안토닌 드보르작의 신세계교향곡이 울려 퍼진다. 지난 2년여의 좌절과 외로움이 주마등처럼 스쳐가고, 어느 순간 음악의 고운 선율을 타고 하늘을 날고 있는 자신이 느껴진다. 우리의 연주가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있다니. 지휘를 하고 있다기보다 지상 최고의 음악을 감상하는 기분이다.

“우리가 이렇게 잘했었나” 섣부른 솜씨에 배탈까지 나며 맘 졸이게 한 우리 화북윈드오케스트라가 온 동네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고 있다. 2014년 9월 25일. 나는 그 날이 제주형 엘시스테마의 시작을 알리는 날, 동네 오케스트라의 시초가 된 역사적인 날로 기록되기를 소망한다.

‘엘 시스테마(El Sistema)’. 1975년 2월에 베네수엘라의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 박사가 빈민가 아이들을 위해 시작한 국가적인 음악교육시스템이다. 지난 35년간 엘 시스테마를 거쳐 간 사람이 약 30만명이고 현재 베네수엘라에서는 800여개의 오케스트라가 활동 중이다.

엘 시스테마는 배출해 낸 수많은 음악가만큼이나 베네수엘라의 음악수준을 세계 최고의 반열로 올려놓으며 관광객을 유치하고 악기제조, 교육, 공연 등 음악자체로도 큰 산업이 되게 했으며 연주자, 작곡가, 음악감독 등이 중요하고 높은 급여를 받는 직업이 되게 하였다. 세계 최고의 인기지휘자, 천재지휘자, 클래식 음악의 대중화, 음악을 통한 사회운동가, 현 LA필 음악감독, 세계최고의 오케스트라 베를린 필 음악감독 내정, 수많은 수식어를 가진 ‘구스타보 두다멜’이 엘시스테마가 낳은 인물이다.

베토벤·모차르트가 그러했듯이 신동은 하늘이 내린다기보다 어렸을 때부터의 음악적인 환경이 중요하다. 생각하는 대로 상상하는 대로 신체가 반응하는 체화된 재능은 유년기에나 계발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두다멜 또한 5살에 종이악기 오케스트라를 시작으로 온 동네를 음악에 빠져들게 한 엘 시스테마가 있었기에 세계 최고의 거장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클래식의 본고장인 유럽의 자존심이요, 베를린 필의 음악감독인 ‘사이먼 래틀’조차도 세계 클래식 음악의 미래가 베네수엘라에 있다고 할 만큼 엘 시스테마 40년을 높게 평가한다.

우리 제주에 그런 엘 시스테마가 있어 두다멜 같은 사람이 나온다고 가정해 보자. 신화역사공원과 두다멜이 이끄는 오케스트라, 어느 것이 우리에게 좋은 수익모델이겠는가? 관광객 유치와 지역발전을 위해 노형타워, 신화역사공원과 같은 외형적 개발과 성장도 필요하다.

하지만 수익이 투자자에게 환원되는 것 또한 불가피하다. 우리는 많은 부문에서 자본에 밀리고 아이디어에 밀리고 전문성과 서비스 정신에서도 밀려 하다못해 마트와 먹을거리 장사에서도 밀려나고 있다. 육지사람·제주사람, 한국사람·중국사람 구분할 필요 있나? 다민족 다문화가 융합되는 것이고 세계는 하나인데. 참 아름다운 생각이다. 단, 우리자신이 그 속에서 공존공영이 가능해야 한다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

결국 우리의 미래가치는 사람뿐이다. 사람과 자본이 제주로 몰려오는 속에서 우리 개개인의 경쟁력을 키워내는 것만이 우리가 사는 길이다. 그러함에도 우리 제주교육이 ‘잘난 놈’을 골라내어 서울 보내는 대학입시에만 매달리고 있으면 희망이 없다. 40년 후 가장 제주다움으로 제주만의 고부가가치 콘텐츠를 만들어낼 인재를 등장시키려면 지금부터라도 제주형 엘시스테마를 시작해야 한다.

꼭 음악만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음악을,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공연기획을 배우고 연구할 수 있도록, 회의산업을, 화산을, 해양을, 곶자왈을, 태권도를, 전통문화를 연구할 수 있도록 수능으로부터 자유로운 학교를 만들어 보자. 가장 한국적인 것으로 가장 제주다움으로 세계인이 찾는 제주가 되려면 우리의 교육시스템이 바뀌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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