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부국장 한경훈
“내가 누군지 알아?” 세월호 유가족 대리운전기사 폭행사건의 발단이 된 한 야당 국회의원의 신분 과시적 발언이다. 사회적 약자인 대리기사를 상대로 한 이 막말은 ‘갑(甲)질’의 상징어가 될 정도로 사회적으로 큰 파문을 일으켰다.

국민의 대표임을 망각한 그의 시대착오적인 언행으로 국회의원의 격은 한 단계 더 떨어졌을 게 뻔하다. 국회의원 개개의 일탈행위는 국회의 권위 훼손으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한국 사회는 민주화 이후 ‘탈권위주의(脫權威主義)’ 사회로 발전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기성 권위가 점점 힘을 잃고 있다. 권위주의시대 공포의 대상이던 경찰서에서 술 취한 시민이 행패를 부리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정당하고 합리적인 ‘권위’의 추락은 사회 질서와 통합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다. 아버지의 권위가 떨어지면 가정이 바로 서지 않고, 선생님이 권위를 잃으면 교육이 제대로 되지 않는 법이다.

특히 국가기관과 공공단체가 권위를 확보하지 못하면 사회질서 유지에 치명적이다.

문제는 행정기관과 사법기관, 교단(敎團) 할 것 없이 조직의 권위 실추를 자초하고 있다는 점이다. 구성원의 도덕적 해이로 인한 비위행위가 그 주요 요인이다.

최근 제주에서는 자신의 본분을 망각한 공무원들의 터무니없는 범죄가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특히 사회질서 유지 역할을 해야 할 사법기관 구성원들의 범죄행위도 속출해 도민들에게 충격과 실망을 안겼다.

올해 들어 제주도농업기술원 소속 공무원이 시설사업 보조금 지원을 미끼로 농민들을 상대로 16억원대의 사기행각을 벌인 사실이 드러나면서 공직사회 신뢰가 땅에 떨어졌다. 해당 공무원은 지난 9월 징역 6년의 중형을 선고 받았다.

또 같은 달에 경찰 중견 간부가 평소 친밀한 관계였던 동료 여직원을 흉기로 협박하고 폭행한 혐의로 구속되는 일도 있었다.

이에 앞서 8월에는 현직 제주지검장이 야간에 노상에서 음란행위를 한 혐의로 경찰에 현행범으로 체포되는 전대미문(前代未聞)의 사건이 발생했다. 유사한 사건의 발생을 막아야 할 위치에 있는 공직자들의 낯부끄러운 행위로 해당 기관의 권위가 실추됐음은 물론이다.

승진과 관련해 금품을 건네는 악습도 여전하다. 제주도소방안전본부는 이달 초 승진과 관련해 금품 제공 사건에 연루된 간부 직원을 직위 해제했다. 이 소방공무원은 돈으로 보다 높은 ‘직위’를 사고, ‘위신’을 높이려다 패가망신할 처지에 놓였다. 더불어 성실하게 근무하는 동료 직원들과 소속 기관의 명예까지 떨어뜨렸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누구보다 도덕적으로 깨끗해야 할 성직자들의 성범죄가 심심치 않게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제주에서는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 성직자 성범죄가 8건(강간 7건, 카메라 1건) 발생했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온 강물을 흐린다”는 속담이 있다. 구성원 개인의 일탈행동은 조직 전체의 이미지 하락으로 연결된다.

최근 일련의 공무원 비위사건은 공직사회 기강 해이가 도를 넘었음을 보여준다. 이에 따라 각 기관별 자정노력과 함께 공직기강 확립이 절실하다. 비위사건을 개인의 일탈행위로만 치부할 일은 아니다. 조직 내부에 부조리를 조장하는 문제점은 없는지, 리더의 역할과 관리 시스템은 제대로 되고 있는지 점검해야 한다.

그런데 직원들의 범죄행위로 인해 실추된 권위 회복을 위해서는 기관 본연의 역할에 충실 하는 것이 최선의 길이다. 도정과 검·경이 역할을 제대로 하면 도민들의 신뢰가 쌓이고, 자연스레 기관의 권위도 높아질 것이다. 이를 위해선 그 구성원들이 자신의 본분을 뚜렷이 자각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자신에게 주어진 사회적 책임과 임무가 무엇인지 분명히 인식하고 그에 맞게 행동해야 한다.

제주사회 공직자들은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을 가슴에 새겼으면 한다. 남이 내가 누구인지 알아주기를 바라기 전에 스스로 내가 누구인지 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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