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국장 김철웅
취지는 좋았다. 모양새도 좋았다. 요즘 한참 시끄러운 인사청문회 얘기다. 당초, 아니 현재도 제주특별법 상 제주도의회의 인사청문 대상은 부지사와 감사위원장 2명뿐이다. 그런데 대상이 늘어나기 시작, 이젠 8명이다. 원희룡 지사가 고위 공직자의 도덕성과 업무수행 능력 검증 등을 위해 인사청문회가 필요하다는 도의회의 주장을 받아들이면서 비롯됐다.

추가의 처음은 행정시장이다. 민선6기 원희룡 도정의 첫 제주시장으로 발탁된 이지훈씨가 취임 한 달 만에 하차하자 논의가 급물살을 타며 지난 8월13일 인사청문 도입을 합의했다. 다음은 주요 기관장이다. 원 지사는 9월11일 출자 출연기관장 인사청문회 도입 방침을 발표, 제주도개발공사와 제주에너지공사·제주국제컨벤션센터·제주발전연구원,제주관광공사의 장 등 5명이 추가됐다.

‘낙하산’ 출신 기관장 후보자 입장에선 땅을 칠 일이다. 이전에는 ‘낙하산’이란 비난도 ‘뒷담화’ 수준이었다. 그래서 참을 만 했다. 만만치 않은 보수에 ‘끗발’도 좋으니 귀를 잠시만 막으면 됐다. 상황이 달라졌다. 인사청문이 도입되면서 평가가 공공연해져 버렸다. TV 생중계는 물론 신문 지상을 통해서도 보도되니 선뜻 나서질 못한다. “아, 옛날이여”를 외칠 판이다. 인사청문회의 긍정적 일면이다.

역기능도 만만치 않다. 과정이 취지와 달리 엇나간다는 여론이다. 인사청문회가 당초 기대했던 집행부와 견제기관 사이에 ‘협치’의 수단이 아니라 종종 충돌의 빌미가 되고 있다.

추가이후 처음 실시된 이기승 제주시장 예정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는절차적인 면에선 나쁘지 않았다. 도의회에서 ‘부적격’이라고 하자 시장 예정자가 스스로 사퇴, 인사권자나 도의회의 권위를 지킬 수 있었다.

다음부터가 문제다. 도의회 행정자치위원회는 10월30일 강기춘 제주발전연구원장 예정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진행하지 않았다. 거부 명분은 ‘들러리’였다. 사흘 앞서 진행된 이성구 제주에너지공사 사장 청문보고서에 도덕적 결함과 각종 의혹을 지적하며 부정적 의견을 적시했음에도 불구, 임명해버렸다는 것이다. 부정적 의견을 적시하면서도 정작 중요한 ‘적격·부적격’ 의견을 명시하지 않은 것은 의회가 놓은 덫이고, 원 지사는 그것에 걸려든 형국이었으나 의회는 ‘의회 경시’라며 강력한 불쾌감을 표출했다.

이후 개발공사 사장과 발전연구원장 청문회는 원만했다. 털다보니, 아니 전부터 먼지가 없지는 않았지만 선의의 ‘협치’ 제안을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는 비판과 계속되는 제동에 대한 부담감 등으로 도의회가 ‘적격’ 판단을 내렸고, 지사는 임명했다.

지금부터는 ‘위기’라 여겨진다. 1일 인사청문회를 가진 손정미 제주국제컨벤션센터 사장 예정자가 그 중심에 있다. 임명 여부에 따라 적지 않은 파장이 예상된다. 도의회 문화관광위원회가 내놓은 의견은 “전문경영인으로서의 자질을 찾아 볼 수 없다”면서 ‘부정적’ 이다.

그런데 임명강행 방침 기류가 전해진다. 그렇게 되면 ‘시한폭탄’이 작동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도의회의 의견이 다시 무시되는 셈이다. ‘협치예산’ 논란에 이어 ‘부정적’ 판단의 이성구 사장 임명 등으로 골이 깊어질 대로 깊어진 집행부와 도의회다.

지명 철회도 모양이 빠진다. “민선6기 한 일이 뭐냐”는 질문에 “실패한 인사라도 있지 않느냐”는  시중의 비판에 메뉴를 하나 더 추가해야할 판이다. 그야말로 진퇴양난이다. 어설픈 제안으로 제 발등을 찍는 격이다.

도의회도 ‘불만’이다. 청문회 준비와 참여로 일이 늘어났다. 개인적인 감정이 없고, 아니 좋은 감정이 있더라도 인사청문회에선 좋은 소리보다는 지적을 하게 된다. 솔직한 말로 기자들이 지켜보는 데다 ‘지적질’의 정도에 따라 여론의 평가가 매겨지니 대충 할 수도 없다.

행정시장이야 상징성이 있으니 그렇다 해도 나머지 기관장에 대한 인사청문은 재고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시행 전에야 긍정적 효과에 이끌렸지만 시행하는 과정에서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 대다수의 인사들이 청문회 장에서 인격적으로 발가벗겨지는 부담감 때문에 선뜻 나서려하지 않아 인물난을 부추기는 결과도 빚어지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인재풀이 좁은 제주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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