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국장 김철웅

결국 터지고 말았다. ‘협치예산’ 파문과 인사청문회 이견 등으로 일촉즉발 양상을 보이던 제주특별자치도와 도의회다. 지난 15일 2015년도 제주도 예산 부결 사태로 충돌했다. 도의회는 이날 3조8194억원 규모의 2015년도 예산안 수정가결안을 반대 36명·기권 1명으로 부결시켰다.

그렇다고 당황할 정도는 아니다. 어느 정도 예견됐다. 집행부는 예산안을 제출하며 ‘원칙’을 강조했다. 자치단체장의 동의 없는 증액과 비용항목 신설을 금지하고 있는 지방자치법 제127조3항 준수를 요청했다. 그런데 도의회는 예결위를 통해 408억300만원을 삭감, 증액 또는 비목을 신설하며 ‘맘대로’ 배정해 버렸다.

예산편성권 침해 등 월권을 넘어 위법이다. 올해도 원칙으로 위법적인 관행을 바로 잡지 못하고, 원칙이 위법적인 관행에 무너질 판이었다. 그래서 의회의 부결이 아니라도 집행부의 ‘부동의’가 예견됐었다.

부결 과정도 옳지 않았다. 원희룡 지사가 수정예산안에 대해 부정적 발언을 하자 구성지 의장은 “마이크를 끄라”고 지시한 뒤 “경고한다. 퇴장을 명할 수도 있다”며 발언을 제지했다. 그래도 원 지사가 발언을 계속하자 곧바로 정회를 선포해버렸다

이 무슨 무례인가. 구 의장 앞에 섰던 사람은 고향 후배 원희룡이 아니라 제주도민을 대표한 도백이었다. 그것도 제주도에서 가장 많은 표를 받은 사람이다. 구 의장의 행태는 자신들의 존재도 부인한 어불성설의 결과였다. ‘민간인’이었던 자신들이 도지사와 공무원들을 세워놓고 ‘질책’할 수 있는 것 역시 도민들의 표 덕분이다. 도의회의 부결을 탓하는 것이 아니다. 경우가 아니라는 것이다. 가결이든 부결이든 지사의 발언은 다 들어야 했다.

도백의 발언도 지나침이 없었다. 증액과 신설된 항목에 대한 구체적인 사업계획과 산출내역을 달라는 것이었다. 당연한 요구다. 원희룡의 개인 돈이 아니라 세금, 도의원들이 집행부를 탓할 때 잘 쓰는 ‘혈세’를 쓰는 일이다.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지는 알아야 동의든 부동의든 할 것이었다.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동의를 했다면 직무유기였다.

도의회가 증액 사업을 구체적으로 밝히지 못하는 이유를 알 것 같긴 하다. 증액 예산 가운데는 ‘00합창단 지원’ ‘00공동주택 개선’ ‘00동 우수단체 행사 지원’ ‘00노인회 역사문화체험 지원’ 등 특정 지역 또는 단체에 대한 ‘선심성’ 사업들이 눈에 띈다. 혈세로 지역구 챙기기다.

반면 ‘지역구 증액’을 위해 국비 매칭사업비 8건 49억원이 삭감됐다. 때문에 축산시설현대화, FTA대응 무병어류종묘기지화 사업 등이 무산될 처지다. 그야말로 소탐대실이다.

이게 도민 전체의 ‘손톱 밑 가시’인지 묻고 싶다. 구 의장은 “의원들은 ‘손톱 밑 가시’와 같은 도민 민원을 반영해 증액했다. 이를 선심성이라고 매도한 것은 문제”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약은 약사, 진료는 의사처럼” 예산 배정을 통한 손톱 밑 가시 제거는 집행부의 몫이다.

예산을 편성하고 싶다면 도의원이 아니라 공무원이 됐어야 했다. 도의원이면서 예산 배정에 욕심이 있다면 행정사무감사를 실시하는 대신 공무원들로부터 의정활동감사를 받을 용의가 있는지 묻고 싶다. 선박의 안전항해를 위해선 항해파트와 기관파트가 서로의 영역을 존중하며 제 역할을 다하듯 집행부와 의회도 영역과 역할이 다르다.
 

어찌 보면 ‘묻지마 동의’를 해왔던 집행부의 업보다. 그동안 무엇이 그리 좋았는지는 모르지만 집행부와 의회간 ‘좋은 게 좋은 거’라며 짬짜미에 가까웠던 불법 증액과 집행부의 용인이 있어왔다. 그러다보니 도의원들이 ‘잘못된’ 관행에 젖어버렸다.

이번 사고는 쌍방과실이다. 비율은 다르다. 집행부가 운전하며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등 옆 자동차인 의회의 심기를 건드렸더라도 지방자치법이라는 중앙선을 침범해 원인을 제공한 것은 도의회가 명백한 잘못이다.

그리고 집행부가 예산부결이란 충돌 사태를 막기 위해 증액에 대한 타당한 이유라도 듣자고 해도 의회는 막무가내였다. 적반하장이다. 운전을 삐딱하게 한 도의적 과실이 상대편에 있기는 하나 도의회의 실정법 위반이 크게 느껴진다. 잘못된 관행은 척결돼야 함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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