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국장 김철웅

극한 대립까지 치달았던 제주특별자치도와 제주도의회의 ‘예산안정국’이 마침내 마무리됐다. 도의회는 29일 오후 11시 3조8194억원 규모의 2015년도 제주도 예산안에서 1682억원(4.4%)을 삭감한 수정안을 통과시켰다. 삭감 예산은 예비비 1억9200만원과 내부유보금 1680억800만원으로 증액됐다.

외견상 승자는 도의회다. 집행부에 대한 ‘통렬한’ 복수다. 사상 최대 규모 삭감이라는 예상치 못한 수로 일격을 가했다. 1682억원 삭감은 제주도 사상 최대 규모임은 물론 본예산 대비 비율로도 전국 최고다. 비율 두 번째인 경기도는 2.0%다.

또한 법정경비 등을 제외하고 대부분 완전 또는 50% 삭감하며 집행부의 손과 발을 묶어버렸다. 특히 집행부 대변인인 소통정책관 소관 예산은 23억7300만원 가운데 21억9400만원을 삭감, 사실상 ‘무장해제’시켰다. 아울러 스포츠 행사 예산 100% 등 언론사 예산과 사회복지단체 및 장애인단체와 다문화가정 지원사업비 등 ‘약자 예산’도 대거 삭감하며 의회의 ‘절대적’ 힘을 과시했다.

하지만 이것뿐이다. 우선 삭감이 순수하지 못했다. 몽니를 넘어 치졸한 보복이다. 예산심의 과정에서 ‘임의로’ 증액한 408억원에 대해 집행부가 ‘동의’해주지 않자 집행부 예산을 왕창 자른 것이다. 임의증액을 355억원으로 줄여도 집행부가 ‘원칙론’을 고수, 자신들의 ‘쌈짓돈’ 챙기기가 여의치 않자 ‘못 먹는 감’을 찔러버렸다. 음식을 손으로 집어먹으려다 ‘원칙에 맞게’ 젓가락으로 먹자고 하니 상을 엎어버린 격이다.

한마디로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받아쳤다. 그러나 의회 내부에서도 자성의 소리가 들린다. 한 재선 의원은 “제주도의회가 함무라비 시대로 돌아가고 말았다”고 탄식이다. 3800년전 제정된 함무라비법전에 담긴 동태복수법은 시간이 지나며 “어떠한 두 사람도 동일한 신체조직을 가질 수 없어 공정할 수 없다”는 모순 속에서 폐기됐다.

물론 집행부에도 잘못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 ‘임의증액 금지’ 등 지방자치법상의 예산심의 원칙을 지키는 데는 성공했지만 상흔이 아프다. 가장 중요한 도민들의 피해가 불가피해졌다. 누가 예산을 잘랐든 사회적 약자의 어려움이 당장 예상된다. 도의회와 대화보다 회견을 선호한 태도 등이 도의회 입장에선 ‘언론플레이’로 기분 나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번 사태의 결론은 도의원님들의 ‘슈퍼 갑(甲)’질이다. 민생 예산도, 집행부가 밉다는 이유로 대거 삭감해 버렸다. 결국 도민들이 준 권한으로 도민 위에 군림하는 슈퍼 갑질을 한 셈이다.

그리고 다시 갑질을 예고하고 있다. 삭감항목을 유보항목으로 편성한 것이 그렇다. 도의회 ‘망치의 힘’이 절대적인 추경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 놓았다.

모양도 좋지 않다. 사상 최대 삭감의 저의가 언론과 사회적 약자들을 볼모로 잡고 추경을 종용하는 모습으로 읽힌다. 사업비를 대폭 삭감당한 언론사와 당장의 지원이 필요한 사회적 약자들이 추경의 목소리를 높이도록 하겠다는 ‘노림수’다.

도의회는 20년 넘은 전국축구대회를 비롯, 마라톤대회 등 언론사 주최 체육대회 예산을 회사 관계없이 전액 삭감했다. 내년 체육대회를 아예 치르지 말라는 얘기는 아닐 것이다. 그래서 “사업을 해야하는 만큼 추경을 빨리 해달라”고 집행부에다 대고 ‘징징’거려 달라는 주문이다. 치졸하다. “너무 속이 뻔히 들여다보이는 수”라는 재선 도의원의 탄식어린 자성에 공감이 간다.

도민이 아니라 자신들의 입맛에 맞지 않다고 상을 엎은 슈퍼갑, 도의원님들이다. ‘땅콩회항’의 슈퍼갑 못지않아 보인다. 대한항공 슈퍼갑은 땅콩을 시비로 사무장을 내리게 하여 승객들의 안전을 위협했고, 도의회 슈퍼갑은 쌈짓돈을 탐내다 제주사회를 힘들게 하고 있다.

지방자치법이 금하고 있는 ‘임의증액’으로 중앙선을 침범했다는 지적을 받았던 도의회가 이번에는 ‘보복적 삭감’으로 역주행을 시작했다는 제주도청 기자실의 분위기를 전한다. 잘못된 일련의 사태와 관련해 “집행부와 도의회가 50보 100보”라는 지적도 있다. 아니다. 집행부 50보, 도의회 100보가 맞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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