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동시조합장선거전이 한창이다. 선거운동이 중반을 넘어서면서 선거일인 오는 11일까지는 이제 5일밖에 남지 않았다.

제주지역에서는 농협과 축협, 수협, 산림조합 등 모두 31개 조합에서 조합장을 뽑는다. 후보로 71명이 나서 경쟁률은 2.3대이다. 전국평균 2.7대1을 밑돌면서 부산과 함께 가장 낮다.

선거가 치러지는 도내 31개 조합 가운데 현직이 이런저런 이유로 출마를 접은 곳은 모두 6곳이다. 이들 조합의 선거는 ‘무주공산’을 노리는 후보들의 각축으로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반대로 5개 조합은 경쟁자가 없어 현직이 ‘당선’을 예약해 놓은 상태다. 느긋하게 당선통지서를 받을 날만 기다린다.

최근 들어 조합장, 특히 농협 조합장은 지역사회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수천명의 조합원을 가진 농협은 지역의 경제뿐만 아니라 공동체의 구심체 역할을 한다. 그러다보니 일단 조합장으로 당선되면 지역의 유력인사로 부상한다.

지역구 도의원 등과 어깨를 견주면서 부러울 것 없는 실력자가 된다. 겉으로는 도지사나 국회의원에게 눌리는 것 같지만 실상은 아니다. 표를 먹고 사는 이들도 조합장을 함부로 하지 못한다. 지역농협이 가진 거미줄 같은 네트워크와 정보력, 끈끈한 결속력이 무기다.

농협중앙회도 지역농협과 적당히 ‘밀당’을 한다. 무이자 자금 등으로 지역농협을 관리하지만 눈치도 본다. 중앙회장은 조합장 중에서 뽑힌 대의원들이 선출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앙회 이사회 때는 이사 조합장들이 ‘칙사’대접을 받는다. 회의 참석 수당도 쏠쏠하다고 한다.

농업인 신분에서 권력의 주변으로 진입한 셈이다. 수천만원의 연봉과 엄청난 예산 집행권까지 내세우면 부러울 게 없는 자리다. 수백명에 이르는 직원들의 인사권과 신용, 경제사업에 대한 전권도 행사하는 무소불위의 최고경영자(CEO)가 되는 것이다.

조합장 선거가 과열되는 이유가 다른 데 있는 게 아니다. 권력과 돈을 장악하는 자리여서 그런 것이다.
일각에서는 일부 농협 조합장들이 농업·농촌 현실과는 다른 길을 간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한다. 당선되고 나면 다른 사람이 된다는 말도 심심찮게 나온다. 농업인을 외면하고 조합의 실리만 챙긴다고 곱지 않은 눈으로 본다. 그건 보는 시각의 차이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른다. 농업인의 실익과 조합의 경영은 따로 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문제는 조합원이다. 농협과 조합장이 삐딱하게 보인다면, 그 책임도 조합원에게 있다는 얘기다. 선출직인 조합장을 견제할 제도적 장치는 얼마든지 있다. 조합원 가운데 선출되는 이사와 감사, 대의원이 있다. 조합원들이 불만을 갖는 조합장과 직원들의 고액연봉도 정말 문제가 심각하다면 이사회에서 제동을 걸면 된다. 조합장의 경영이 흐릿하면 감사를 요청하면 된다.

조합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조합원들이 알 수 있고, 공론의 과정을 거쳐 제어할 수 있다. 현실이 그렇지 못하다면, 여러 가지 원인이 있을 것이다. 이사, 감사로 뽑힌 조합원도 권력의 맛에 빠져 자신의 임무를 방기했을 가능성이 높다. 조합장과 적당히 야합하면 나타나는 현상이다. ‘좋은 게 좋은 것’이라고 조합장과 임원, 직원이 짬짜미를 하면 대책이 없긴 하다.

조합장들 가운데 상당수는 직원이나 임원 출신이다. 조합의 사정이나 임직원들의 속내를 훤히 꿰뚫고 있다.

조합장으로 당선되고 나서 직원들의 눈치를 보는 이들은 십중팔구 다음 선거를 겨냥하고 있다. 직원들의 월급을 올려주고, 복지혜택도 늘려주면서 환심을 산다. 조합장 선거는 직원들이 한다는 씁쓰레한 말이 나온 게 엊그제가 아니다. 그런 조합장을 뽑고, 비슷한 직원들을 방치한 것은 조합원들이다. 더 심각한 것은 그런 조합장이 재선, 3선을 한다는 사실이다.

누굴 탓하기 전에 조합원 스스로 깨어있어야 하는 이유다. 조합장을 욕할 자격을 갖추고 싶거든 이번에는 제대로 찍어야 한다. 조합장이 문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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