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 거센 변화 요구에 직면
최근 선거서 조합장 대거 교체
그러나 구태 여전해 비난 자초

퇴직 후 바로 상임이사 인선
특별퇴직금 제한규정 改惡
농업인 출혈 농약장사도 눈총

3?11 전국동시조합장선거가 끝난 지 한 달이 지났다. 선거 결과에 따라 취임한 조합장들이 임기를 시작한지도 나흘 후면 한 달이 된다.

긴 시간이 지나지 않았지만 당시를 반추(反芻)해보자. 도내 31개 농수축협과 산림조합에서 치러진 선거에서 절반이 넘는 18개 조합의 수장이 바뀌었다. 현직은 무투표 당선을 포함해 13명만이 연임에 성공했다.

특히 도내 최대 조직인 농축협의 경우도 23개 조합 가운데 절반이 넘는 12명의 조합장이 새얼굴로 교체됐다.

그만큼 변화와 혁신에 대한 조합원들의 요구가 거세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한?중 FTA 타결 등 제주농업의 위기를 타개해야 한다는 절박감도 작용했다.

그런데 최근 일부 농협 안팎에서 불거지는 논란거리들을 보면 그런 기대를 예상보다 빨리 접어야 하는 것이 아닌지 불길한 느낌이 든다.

도내 모 농협의 사례를 보자. 임원인 상임이사를 선출하는 과정에서 불거진 일이다. 지난달 25일 명예퇴직한 전 상무 A씨가 최근 상임이사로 뽑혔다. 문제는 A씨가 명퇴하기 전인 지난달 20일 열린 이사회에서 직원 명예퇴직 규정이 고쳐졌다는 점이다.

명예퇴직을 한 후 1개월이 안 돼 상임이사로 선출될 경우 퇴직자에게 지급한 특별퇴직금의 일부를 환수하도록 한 규정에서 ‘1개월’이라는 단서가 삭제됐다.

조합측은 상임이사 모집 공고를 여러 차례 냈지만 응모자가 없어 부득이하게 규정을 고쳤다고 한다.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농협중앙회가 이 같은 특별퇴직금 지급과 관련한 규정(안)을 만들어 회원조합에 권고할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도덕적 해이(Moral hazard)’를 경계하기 위해서다.

도내 대부분의 조합들은 이 규정(안)을 참고해 특별퇴직금 지급 기준을 마련, 시행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농협의 상임이사는 정년이 얼마 남지 않아 명예퇴직을 하는 특정인사를 사실상 내정한 후 선출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보기에 따라선 매우 요식적인 절차일 수 있다. 상임이사제 도입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제식구 챙기기’라는 비판을 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과정에서 같은 농협에서 신분만 달라지는 데 거액의 특별퇴직금을 주는 것에 대한 조합원들의 눈총이 쏠리자 관련 규정이 만들어진 것이다.

비상임조합장 조합이라서 상임이사 자리를 더는 비워둘 수 없다는 나름의 현실적인 불가피성도 항변한다. 그래도 아닌 것은 아니다.

이 조합은 지난 2013년 구매담당 직원이 조합원들의 농자재 대금 9600여만원을 빼돌린 비리가 발생해 조직관리에 허점을 드러내기도 했었다.

다시 선거 당시로 돌아가 본다. 상당수 후보들이 ‘조합원을 위한 조합’을 외치며 변화와 개혁, 혁신을 추구하겠다고 약속했다. 조합장 연봉을 조정해 조합원평균 소득 증감에 맞추겠다는 이도 있었다.

상임이사 논란이 불거진 앞의 농협 조합장도 ‘조합장은 조합원의 무한 봉사자이므로 조합원의 눈높이에 맞도록 연봉을 조정하겠다’고 공약했다. ‘뒷간 갈 때 마음 다르고, 올 때 마음 다르다’지만 모두 지켜볼 일이다.

선거가 끝난 후 당선된 조합장 가운데서 선출하는 품목협의회장 등의 자리를 놓고도 볼썽사나운 풍경이 벌어졌다는 후문이다. 선수(選數)가 많은 조합장이 내심 회장 자리를 노렸다가 자신의 뜻과 어긋나자 얼굴을 붉히면서 분위기를 싸하게 만들었다는 얘기다.

최근에는 일부 지역농협이 농약 공급업체에서 주는 판매장려금을 욕심 내 계통구매를 꺼린다는 지적도 있었다. 드러내놓고 말 못할 여러 가지 사정이 있겠지만, 농협이 자신들의 주인인 농업인 조합원들의 출혈을 바탕으로 수익을 올리는 것은 말이 안된다. 농업인들의 경영비 부담을 줄여줄 수 있다면 모든 방법을 강구해야 하는 것이 농협의 역할이다.

그 동안 변화에 둔감했다는 지적을 받아온 농협이 어떤 행보를 보일지 농업인들은 예의주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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