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 전 제주시 탑동 매립
재해·월파피해 등 부작용만 양산
인간 탐욕·무지가 빚은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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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교훈 잊은 개발사업 여전
개발만능 패러다임서 벗어나
환경가치 존중하는 사회돼야

“두 갈래 길이 숲속으로 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사람이 덜 밟은 길을 택했고, 그것이 내 운명을 바꿔놓았다.” 로버트 프로스트의 유명한 시(詩) ‘가지 않은 길’의 마지막 구절이다. 시인의 노래처럼 인생은 망설임과 선택의 연속이다. 그 선택에 의해 인생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열린다.
공무(公務)도 마찬가지다. 지방자치단체는 매순간 정책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우물쭈물하다 실기(失機) 하거나, 역방향으로 가서 후회하기도 한다. 어떤 정책을 택하느냐에 따라 주민들 생활의 질이 달라진다. 잘못된 결정의 피해는 지역민들에게 돌아간다.

제주도정에서도 많은 실책 사례를 찾을 수 있다. 전국 최초로 제주에서 실시된 차고지증명제는 자동차 수요관리정책으로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도중에 멈칫대는 바람에 동력이 떨어지고 있다. 제도는 대형차를 우선해 2007년 2월부터 시행되고 있다. 차고지를 확보하지 않으면 차량 등록이 안 된다. 당초 2009년 예정이던 중형차의 시행 시기는 미뤄졌다. 주차기반시설 미흡을 이유로 두 차례나 연기, 2017년 시행하기로 했다. 뜸을 들이는 사이 시행여건이 악화됐다. 자동차가 주차시설보다 훨씬 많이 증가한 것이다. 가지 않은 동안에 비가 많이 내려 숲길이 진창으로 변해버린 격이다. 이 제도가 정상 추진될지는 미지수다.

가지 않은 길을 아쉬워하며 뒤늦게 땅을 치는 일도 있다. 제주항공 증자에 참여 않은 게 그 중 하나다. 제주도는 2005년 1월 제주항공 출범 당시 50억 원을 출자, 지분율 25%의 대주주였다. 이후 수차례 이뤄진 자본금 증자에 참여하지 않으면서 지분율이 4.5%까지 낮아졌다. 창립출자 승인 때 도의회가 부대조건을 달아 추가 출자를 막았다. 제주항공에 대한 발언권?지배력 약화는 물론 실리(實利)를 잃는 단초가 됐다. 액면가 5000원인 제주항공 주식은 최근 장외시장에서 4만원에 거래되고 있다. 주식 무상증여에 앞으로 상장(上場)까지 감안하면 막대한 경제적 이익을 눈앞에서 놓쳤다. 뼈아픈 대목이다.

무엇보다 통탄할 일은 가서는 안 될 길을 가 후대에까지 짐을 지우는 것이다. 대규모 개발사업에 의한 환경 파괴가 대표적인 사례다. 제주시 탑동은 과거 전국 어디서도 보기 힘든 ‘먹돌 해안’ 이었다. 그러나 1991년 탑동 매립 이후 수려한 자연자원은 자취를 감추고, 개발의 부작용만 남았다. 태풍 월파피해 보수·보강에 매년 수억원의 혈세가 투입되고 있다. 그것도 모자라 탑동 일대는 해일 위험 때문에 2009년 재해위험지구로 지정되기에 이르렀다. 인간의 탐욕과 무지가 빚은 비극이다.

문제는 이런 탑동의 교훈을 잊고 자연을 훼손하는 개발사업이 계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에는 중국 등 외국 자본에 의한 ‘마구잡이’식 개발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도민들의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경관이 빼어난 송악산 일대와 애월읍 중산간 상가리 지역 개발사업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전임 도정 때부터 추진된 이들 사업에 대해 원희룡 지사는 “행정의 일관성보다 환경 보전에 최우선 가치를 두고 해법을 찾겠다”는 뜻을 밝혔다. 다행이다. 그러나 단순히 사업을 ‘불허’하는 소극적 대응에 그쳐서는 안 된다. 도민들의 환경보전 의식을 높이는 노력을 해야 한다. 개발 만능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환경의 가치가 존중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요즘 도내에선 방치된 전분공장이 복합문화공간으로, 허름한 감귤창고가 게스트하우스로, 농어촌의 키 낮은 슬레이트집이 카페로 재탄생하고 있다. 이렇듯 자연 훼손을 최소화하면서 투자수요를 충족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공간 재활용처럼 제주 땅의 재활용도 적극 추진할 필요가 있다. 개발수요를 원도심으로 흡수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환경은 한번 파괴되면 원상복구가 불가능하다. 되도록이면 가지 말아야 할 길이다. 환경 보호를 위한 우회도로를 만드는 데 도정이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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