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만을 위한 서러운 삶이지만
당연히 짊어지고 가야할 운명처럼
끝없는 용서로 감싸는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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쓴 것만 알아 쓴 줄 밖에 모르는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지극한 사랑
잠시 만나고 헤어질 땐 눈물 훔쳐

"어디에 계시든지 사랑으로 흘러/ 우리에겐 고향의 강이 되는 푸른 어머니/ 제 앞길 만 가리며 바삐 사는 자식들에게/ 더러는 잊혀 지면서도 보이지 않게 함께 있는 바람처럼/ 끝없는 용서로 우리를 감싸는 어머니/ 당신의 고통 속에 생명을 받아/ 이만큼 자라온 날들을 깊이 감사 할 줄 모르는/ 우리의 무례함을 용서 하십시오." <이혜인 수녀의 시 '어머니에게 드리는 노래' 중>

올해도 어김없이 어버이 날을 맞는다. 오늘(8일)이다. 5월은 가정의 달이기도 하다. 싯구처럼 제 앞길 만 가리며 바삐 사는 자식들을 끝없는 용서로 감싸는 어머니를 생각한다. 시인은 당신의 고통 속에 생명을 받아 이만큼 자라온 날들을 깊이 감사 할 줄 모르는 우리의 무례함을 용서해달라고 한다.

팍팍한 세상이다. 먹고 사느라 바쁜 일상이다. 그러다 보니 무례함을 알면서도 바쁘다는 핑계로 우리는 어머니를 자주 찾아뵙지 못한다. 손에 뭔가를 들고 오기를 바라지 않는데도 어머니가 있는 곳으로 향하는 발길은 뜸하다. 아무리 멀어도 자동차로 한 시간 이내의 거리인데 말이다. 가서 그 잘난 얼굴 한번만 보여줘도 되는데, 잘 안된다. 어머니의 존재를 알면서도 어떤 때는 그 존재조차 깜박 잊고 산다. 불효(不孝)다. 어머니는 섭섭해하면서도 자식을 두둔한다. 바쁘면 안와도 좋다고, 전화로 목소리만 들려줘도 괜찮다고. 그러면서 이웃에게는 우리 자식들은 집에도 자주 들르고 전화도 줄기차게 한다고 자랑한다. 그게 세상의 어머니들이다.

어머니는 강하다. 특히 제주의 어머니는 더 강하다. 자식을 주렁주렁 매달고도 악착같이 일을 한다. 자식들을 다 키우고 그 자식들이 자식을 낳아도 여전히 쉬지않고 몸을 움직인다. 자식들이 출가하면서 어머니를 편히 모시겠다고 하면 손사래를 친다. 혼자 사는 게 편하다면서 당신 스스로 숙식을 해결한다. 자식들이 가끔 주는 용돈은 고스란히 손자들에게 돌아온다. 자식에 그 자식만을 위한 서러운 삶이지만 전혀 서러워하지 않는다. 서러움을 내색하지 않는 어머니에게 우리는 불효를 한다. 자식들에게 효(孝)를 강요하는 어머니는 없다. 당신은 지치고 고되면서도 자식들이 잘 되기 만을 바란다. 마치 당신이 당연히 짊어지고 가야 할 운명처럼….

그래도 사람인지라, 어머니인들 왜 자식들이 보고싶지 않겠는가? 어머니는 가까운 거리에 사는 자식들이 보고 싶을 때는 직설적으로 표현하지 않는다. 약간의 꼼수(?)를 부린다. 집에 영문도 모르는 우편물이 와있다거나 전기제품이 고장나서 불편하다는 등등으로 자식들을 당신곁으로 오게 한다. 자식들은 어머니의 의도를 눈치채고 미안한 마음에 쏜살같이 달려간다. 자식을 맞는 어머니는 설레인다. 바쁜데 왜왔냐고 말을 하면서도 반가워하는 눈치가 역력하다. 어머니가 그 모습을 감추어도 자식들을 다 안다. 어머니는 당신이 손수 장만한 먹거리들을 하나 둘 풀어놓고 '이렇게 먹어라, 저렇게 먹어라'하며 열심히 설명한다.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지극한 사랑이다. 오랫만에 본 어머니의 얼굴엔 주름이 더 늘었다. 어머니와 잠시 만나고 헤어질 땐 눈물을 훔친다.

50대 중반으로 치닫는 나이에, 어머니가 살아계신 것도 고마운데 아들은 그 고마움도 모르면서 어린 애처럼 투정을 부리며 철없는 인생을 살아갑니다. 어머니의 바램처럼 살아가지 못하는 자식입니다. 그래도 어머니는 자식을 껴앉습니다. 그게 자식이고, 그 자식을 바라보는 어머니인가 봅니다. 가정을 생각하게 하는 달, 아직도 철이 안든 못난 아들이 어느 시인의 시를 빌려 어머니를 떠올립니다.

"한 몸 이었다/ 서로 갈려 다른 몸 되었는데/ 주고 아프게/ 받고 모자라게/ 나뉘일 줄 어이 알았으리/ 쓴 것만 알아 쓴 줄 모르는 어머니/ 단 것만 익혀 단 줄 모르는 자식/ 처음대로 한몸으로 돌아가/ 서로 바꾸어 태어나면 어떠하리." <김초혜 시인의 '어머니 1'>

어머니, 당당하게 살아계셔 주셔서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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