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비밀주의’ 메르스 재난 키워
‘불신 바이러스’ 한번 퍼지면 잡지 못해
지역공동체 존립 기반 훼손할 수도

‘협치’ 내걸고 출범한 민선6기 도정 
제주신항 공론화 없이 일방통행식 추진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도민사회 혼란

“나라를 다스리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공자의 제자 자공이 스승에게 물었다. “식량이 풍족하고, 군비가 넉넉하며, 백성의 신임을 얻으면 된다”라고 공자는 대답했다. 자공이 또 묻는다. “셋 중 하나를 버려야 한다면 어떤 것입니까?” 스승은 “먼저 군비를 버리고, 다음으로 식량을 버리라”고 했다. “민무신불립(民無信不立)-백성의 신뢰가 없으면 국가의 존립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논어 ‘안연(顔淵)’ 편에 나오는 얘기다.

공자의 가르침은 수천 년 세월을 뛰어넘어 우리에게 강력한 울림을 준다. 언제부터인지 우리 사회에는 대형사건이 터질 때마다 수많은 괴담이 횡행한다. 작금의 ‘메르스 사태’에서도 마찬가지 양상이다.

그런데 괴담은 주로 정부에 대한 불신이 낳은 독버섯이다. 대개 정보의 은폐에서 비롯된다. 메르스 공포가 확산되는 와중인 지난 4일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의 조사에서 ‘정부 관리대책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68.3%나 됐다.

정부가 환자 발생·경유병원을 공개하지 않고 ‘쉬쉬’한 게 화근이었다. 비밀주의 때문에 메르스 초기대응에도 실패했다. 이번에도 정부가 믿음을 주지 못하면서 국민 불안이 가중되고 있다. 신뢰 부족으로 인해 사회가 치르는 비용과 고통은 막대하다. 위정자들의 뼈저린 각성이 요구된다.

 ‘불신 바이러스’는 한 번 퍼지면 걷잡을 수 없다. 그 바이러스는 공동체 존립 기반까지 훼손시킬 수 있다. 도내 강정마을이 대표적인 예다. 해군기지 건설을 둘러싼 당국과 반대주민 간, 주민끼리의 갈등이 장기화하면서 마을공동체가 해체 직전까지 갔다. 갈등의 근저에는 불신이 자리 잡고 있다.

제주도는 이를 명심해 ‘신뢰받는 도정’ 기틀 다지기에 주력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제주도정을 보면 아쉬운 점이 많다. 정책 추진과정에서 ‘오락가락’ 행보가 여전하다. 제주도는 지난달 14일 ‘고품질 감귤안정생산 구조혁신 방침’ 발표 때 가공용 감귤 수매 범위를 ‘상품규격 내 결점과’로 제한하겠다고 했다. ‘비상품 규격 감귤’은 가공용 수매에서 제외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농민들이 반발하지 1주일 뒤에는 “가공용 감귤 수매량과 범위 결정은 감귤출하연합회가 하는 것으로 그 결정에 따르겠다”고 입장을 바꿨다. 도정의 발표는 도민에 대한 약속이다. 지키지 못할 약속은 아예 하지 말고, 한 이상 사소한 것도 성실하게 실천해야 한다. 도정이 이에 틈을 보이면 추진하는 정책의 추동력이 떨어져 불필요한 갈등만 양산한다. 

민선6기 출범 1년 만에 도민과의 소통을 저버린 ‘일방통행식 행정’도 고개를 들고 있다. 제주시 탑동 앞바다를 매립해 크루즈 항만 등을 건설하는 제주신항 개발사업이 그것이다. 현재의 계획대로라면 매립규모가 211만3000㎡로 기존 탑동 매립면적(16만5000㎡)의 10배가 넘는다. 대규모 환경파괴를 수반하는 정책임에도 발표 전까지 도민들에게 일언반구도 없었다. 제주도는 정부의 ‘제4차 항만기본계획 변경계획’에 제주신항 개발계획을 포함시키기 위해 사전 공론화 과정 없이 정책을 발표했다고 설명했다. 시간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급하다고 바늘허리에 실을 매 바느질을 할 수 없는 법. 더욱이 ‘탑동 대규모 매립사업’은 추진하지 않는 쪽으로 전임 도정 때 이미 지역사회에서 합의가 된 사안이다.

그럼에도 도민 공감대 없이 불쑥 정책을 꺼내들어 도민사회를 혼란스럽게 하는 것은 유감이다. ‘협치(協治)’를 모토로 출범한 도정이기에 실망감이 더하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감정을 느끼는 도민들이 많을 것으로 본다. 가히 ‘신뢰의 위기’라 할 수 있다.

제주도가 뒤늦게 제주신항 공론화에 나섰지만 ‘신뢰’ 회복이 가능할 지 의문이다. 아무리 좋은 정책도 방법론이 잘못되면 실현될 수 없다. 이 시점에서 제주도정은 ‘민무신불립’의 교훈을 되새겼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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