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엘살바도르서 실종된 시민들의 사진(AP=연합뉴스)

"조직원의 여자 친구가 아니라면 빨간색 머리나 금발을 하지 말라."

엘살바도르의 수도 산살바도르에서 조직 폭력단이 이런 '포고령'을 내렸다는 소문이 퍼지자 겁에 질려 머리를 검게 염색하는 여성들이 속출했다.

산살바도르에서 미용사로 일하는 클라우디아 카스텔라노스는 22일(현지시간) 인터뷰에서 "금발뿐만 아니라 노란 옷이나 빨간 옷을 입어서도 안 된다"고 혀를 내둘렀다.

그는 "이미 노란 옷을 입은 여성 한 명이 버스에서 습격을 받았다더라"라고 다른 소문을 전달했다.

소문이 사실이라는 근거는 없다. 조직 폭력단들조차 괴소문이 돌자 머리 색깔에 대한 지령을 내린 적이 없다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조직 폭력단이 내전을 방불케 할 정도로 기승을 부리면서 신빙성이 없는 위험이라도 일단 피하고 보자는 심리는 대중을 사로잡고 있다.

인구가 600만여명인 엘살바도르에서는 지난달에만 무려 635명이 살인사건에 희생됐다.

지난 주말인 21일에도 산살바도르의 버스 터미널을 지키던 군인 2명이 조직 폭력단으로 추정되는 세력에 살해됐다.

일몰과 함께 공포는 잔뜩 증폭돼 산살바도르의 상점들은 모두 문을 닫고 길거리에는 행인이 아예 자취를 감춘다.

깜깜해지면 경찰도 겁에 질려 지구대들은 조직 폭력단이 수류탄을 안으로 던져넣지 못하도록 셔터를 내려버린다.

경찰관들은 버스로 귀가하다가 조폭들에게 참변을 당할 우려가 있어 지구대 안에서 그냥 잠을 자고 있다.

엘살바도르의 이 같이 무법천지가 된 것은 2013년 정부와 조폭이 맺은 휴전 협정이 지난 1월 깨지면서부터다.

휴전 기간에 살인사건의 발생 빈도는 떨어졌다.

그러나 곧 조폭들이 이 기간에 조직을 재정비하고 무기를 신식으로 바꾸는 데 이용했다는 관측이 나오는 등 휴전 전략이 실패했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휴전 기간에 감시가 느슨한 교도소로 이송된 조폭 두목들은 감방에서 업무를 지휘하기도 했다.

산체스 세렌 엘살바도르 대통령은 작년 6월에 당선되고 나서 6개월 만에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조폭들과의 휴전 협정을 폐기했다.

강경한 진압 방침에 따라 조폭 두목들은 다시 보안 수준이 극도로 높은 교도소로 이송됐다. 작년에 체포된 조직원들은 1만2천여명에 달했다.

두목들이 봉쇄되고 조직의 중책을 맡은 이들이 구속됐으나 조폭들의 기세는 오히려 더 높아졌다.

과거 휴전 협상에 참여한 전직 군 관계자 라울 미한고는 "늙은 지도부를 젊은 지도부가 메웠다"며 "젊은 조폭은 스스로 명성을 쌓으려고 더 광적으로 날뛴다"고 말했다.

엘살바도르 경찰청 하워드 코토 경찰 차장은 빈곤과 청년 취업난 등 근본적 문제가 해소되지 않으면 치안 공백을 해결할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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