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급증 제주에만 83개
정보 홍수 속 기사 신뢰도 하락
편집 등 언론 자체 문제에도 기인

절반 남은 물 “반이나” “반밖에” 등
관점 따라 긍정·부정 상반된 기사
언론 최대 덕목 객관성·정확성

매스미디어의 홍수다. 신문도 넘쳐나고 방송도 넘쳐난다. 인터넷매체까지 급증, 도내에만 49개다. 이제 인구 60만의 ‘조그만 섬’ 제주에 신문과 방송, 인터넷·통신사까지 포함하면 ‘언론’이 83개에 달한다.

이러다 보니 정보를 담은 뉴스의 가치가 떨어졌다. 정보도 수요와 공급의 시장원리가 작용한다. 너무 쉽게 접할 수 있다. 그 많은 매체들이 경쟁적으로 정보를 쏟아내고 있다. 수용자들이 일부러 찾을 필요도 없다.

정보의 신뢰도 또한 낮아졌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누가 무슨 소식을 전하는 데 의심스러우면 대뜸 했던 말이 “신문에 났느냐?”였다. 이제는 아니다. 인터넷과 스마트폰 등 실시간으로 모든 정보를 검색할 수 있으니 굳이 신문에 났느냐고 물어볼 필요가 없다.

언론 자체의 문제도 없지 않다. 기사를 제작하고 전달하는 과정에서 ‘손’을 타는 경우가 없지 않았다. 언론사의 성향·논조·편집방향 등을 명분으로 기사가 ‘가공’되기도 한다.

기사는 팩트(fact·사실)인데 “가공이 가능 하느냐”는 의문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기사 작성과 편집 과정의 근원적 한계로 인해 가공의 여지가 존재한다.

우선 기사는 ‘완벽한 사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기사가 거짓말이란 얘기는 아니다. 기사는 사건에 대한 기록이지만 100% 정확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기자가 직접 목격한 상황도 그렇다. 빗길 교통사고의 경우 운전자의 과실과 미끄러운 빗길, 자동차 결함 가운데 원인이 무엇인지 기자가 정확히 판단할 수가 없다. 전문가를 동원, 첨단 기법과 장치로 분석해도 ‘진실(truth)에 가까운 정황’으로 인식될 뿐이다.

하물며 기자가 직접 확인하지 못한 상황의 정확성은 물을 필요가 없다. 그래서 다수의 취재원과 목격자 등을 대상으로 질문을 하고 취재를 한다. 결국 기자들에게 가능한 최대의 선은 ‘진실에 가장 가까운 기사’다.

편집과정에서도 손을 탈 개연성이 없지 않다. 의제 설정(Agenda setting)과 어떤 기사를 보도하고 키울 것인가에 대한 결정이 언제나 이성적이고 합리적일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반 남은 물병을 보면서 “반이나 남았다”와 “반밖에 남지 않았다”처럼 동일 사안인데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긍정과 부정의 상반된 표현이 가능해진다. 이러한 관점을 좌우하는 게 이른바 회사의 성향이나 편집국 고유의 논조 등이다. 그것을 빌미로 ‘의도’가 포함되는 순간 기사는 객관성을 상실하고 만다.

중요한 사실은 독자와 시청자 등 수용자들은 뉴스로 세상을 판단하기도 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미국의 사회과학자 게이 터크만(Gaye Tuchman)은 뉴스를 ‘세상을 바라보는 창’이라고 했다. 뉴스는 현실을 그대로 반영해 보여주는 거울이 아니라 크기와 색깔이 정해진 ‘틀(frame)’이라는 것이다.

‘틀’은 기사 작성 및 편집 과정에서 구성된다. 틀 만들기는 기사의 최대 덕목인 객관성과 정확성 확보를 위해 아주 중요하다. 하나의 사안인데도, 절반 남은 물병처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기사의 내용이 상반되게 나올 수 있다. 여기에 같은 기사라도 1면 톱으로 배치할 때와 사회면 구석에 담을 때와 수용자들이 느끼는 ‘뉴스 밸류(news value)’는 달라진다.

우리는 이러한 상황을 심심찮게 접해왔다. 강정해군기지 갈등 보도가 좋은 사례다. 보수언론의 보도를 보면 해군기지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국가를 무시하는 ‘빨갱이’들이다. 반면 진보언론에선 지역의 삶을 지키기 위해 중앙정부에 맞서는 ‘의인’들이다. 똑같은 사람들인데 보수의 안경으로 보면 빨간색, 진보의 안경으로 보면 파란색인 셈이다.

많은 이들이 보수와 진보 매체를 같이 봐야 한다고 말한다. 편향적 보도의 문제점을 수용자들이 인식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이건 아니다. 언론사 자체의 ‘주장’을 담아 수용자를 설득하려는 행태는 수용자들을 우롱하는 일이다. 심하면 선전이고 선동이다. 객관적이고 정확한 정보를 전달해 수용자 스스로 판단하게 해야 한다.

제주매일은 그래서 ‘세상을 보는 맑고 바른 창’을 지향하고 있다. 때가 없는 맑은 창이어야 세상을 편견 없이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뒤틀리지 않은 바른 창이어야 세상을 왜곡 없이 정확하게 바라볼 것이다. 창간 16주년을 맞아 그 창을 깨끗이 닦고 바로 세우는 데 더욱 노력할 것을 다짐해본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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