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적인 민원에 굴복하면
“사회정의 무너질 수 있다”
김병립 제주시장 소신 발언

중앙로지하상가 직접 거론
운영 부조리 개선의지 비쳐
백마디 말보다 행동이 중요


메시지는 강렬했다. “굴복하면 사회정의가 무너질 수 있다”고 했다. 김병립 제주시장이 이기적인 집단민원에 대해 한 말이다. 지난 6일 간부회의에서다. 브리핑을 통해 간접적으로 들었지만 결연한 의지가 느껴졌다. 집단민원에 강력 대처하겠다는 마음가짐이 읽혔다. 행정시장에게서는 좀처럼 볼 수 없었던 소신(所信)이 묻어났다.

김 시장은 이날 모 지역 주민들의 클린하우스 설치 반대와 중앙로지하상가 상인들의 집단민원을 거론했다. “매우 이기적이고, 타인의 권리까지 해치며 공동체 갈등을 유발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러한)집단민원에 행정이 굴복하면 비정상이 마치 정당한 것처럼 돼 사회정의가 무너지고, 잘못된 것이 되풀이되는 악순환의 고리가 된다”고 직원들에게 강조했다.

그는 “옴부즈맨 제도와 같은 형식을 빌려 집단 이기주의를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제3자의 입장에서 민원을 신속·공정하게 조사해 처리하는 방안의 강구를 지시한 것이다. 그만큼 집단민원에 대한 고민이 깊다는 얘기다.

김 시장의 이날 발언의 초점은 중앙지하상가에 맞춰졌다고 본다. 도의원 시절부터 지하상가 운영·관리 문제에 관심을 가졌던 그다. 문제의 근원은 점포 임대가 1년 단위 수의계약으로 이뤄지는 데 있다. 관련 조례상 임대계약은 경쟁입찰 방식이 원칙이다. 하지만 단서조항인 수의계약이 철칙이 됐다. 일단 임차권을 확보할 경우 웬만하면 계약 연장이 가능하다. 게다가 임대료도 싸다. 현재 중앙지하상가 점포 평균 임대료는 연 250만원에 불과하다. 수의계약과 싼 임대료로 인해 점포 재임대나 임차권 양도의 여지가 넓어졌다. 불법행위가 자행되고 있다는 의혹이 파다하다. 권리금까지 붙고 있다는 얘기가 들린다. 사실이라면 비정상적인 상황이다. 공공재산이 사유물처럼 이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하상가 상인들의 집단민원은 상가 리모델링 계획에서 비롯됐다. 제주시는 기존 점포 입주자와 재계약을 않고 공사를 진행하겠고 통보했다. 제주시는 부정하고 있지만 상가 운영상 문제를 개선하려는 포석의 성격이 짙다. 개·보수 공사 기간은 오는 연말부터 1년간이다. 상인들은 이에 ‘생존권’을 들어 반발하고 있다. “공사 기간이 너무 길다”며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이는 표면적인 것이다. 리모델링 후 점포 임차권을 보장받을 수 없을 것이란 불안감이 더 크다.

중앙지하상가는 리모델링을 계기로 운영 부조리를 없애는 등 거듭나야 한다. 그러자면 기득권 불인정은 불가피하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듯 공사 후엔 점포 임대계약을 경쟁입찰로 해야 한다. 조례 개정을 통해 수의계약과 제3자 양도 제한도 필요하다. 상인 생존권은 보호돼야 한다. 하지만 공정한 입점 기회 보장은 더 큰 가치다. 그것이 사회정의다.

중앙로지하상가 운영 문제와 관련해선 제주시의 관리 책임도 크다. 기부채납에 의해 소유권이 완전 넘어온 2003년 공개입찰로 전환했어야 했음에도 그대로 방치했다. 문제를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상인 반발을 의식해 개선에 손을 놓고 있었다. 만시지탄(晩時之歎)이지만 이제라도 개선 의지를 보인 것은 다행이다. 상인들의 반발에 어떻게 대처할지 주목된다.

집단민원에는 확고한 철학과 원칙이 중요하다. ‘노(No)’라고 분명히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술에 물 탄 듯, 물에 술 탄 듯’ 어정쩡한 태도는 금물이다. 무른 대응은 김 시장의 말대로 자칫 ‘악순환의 고리’가 될 우려가 있다. 리더가 중심을 잡아줘야 한다.

최근 지역사회에서 집단의 힘을 이용한 부당한 요구가 비일비재(非一非再)하다. 잘못된 집단민원에는 시장이 소신을 가지고 강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 행정시장은 일반 공무원과 다르다. 자기 색깔이 필요하다. 갈등을 두려워 말고 할 말은 해야 한다. 김 시장은 이번에 그 일단(一端)을 보여줬다. 하지만 백
마디 말보다는 실천이 중요하다. 결말이 더 강렬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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