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대표하는 ‘천재화가’
1951년, 11개월간 서귀포 거주
내년 이중섭 탄생 100주년

논란 끝에 문연 이중섭미술관
입주 작가 창작활동 등 지원
가치 재조명으로 관람객도 증가

 화가 이중섭이 태어난 곳은 평안남도다. 그는 오산고등보통학교에 들어가 미술교사 임용련의 지도를 받으며 화가의 꿈을 키웠다. 21세 때인 1937년 일본으로 건너가 분카학원 미술과에 입학했다. 재학 중 독립전(獨立展)과 자유전(自由展)에 출품해 신인으로 각광을 받았다. 졸업 후에도 각종 미술전 수상으로 이름을 알렸다. 이중섭은 일본유학 시절 한 여인을 만난다. 야마모토 마사코, 한국이름은 이남덕이다. 1943년 이중섭은 혼자 귀국해 평양과 원산 등에서 작품활동을 했다. 그의 사랑하는 여인 이남덕은 2년 후 이중섭을 찾아 한국으로 왔고 둘은 1945년 원산에서 결혼한다. 둘 사이에는 2남이 있다. 6·25전쟁이 일어나자 이중섭은 자유를 찾아 가족과 함께 월남해 부산·서귀포·통영 등지로 전전했다. 이 무렵 부인과 두 아들은 일본 동경으로 건너갔고 이중섭은 홀로 남는다. 1953년에는 밀항해 가족들을 만났으나 처가 신세가 싫어 다시 귀국했다. 이후 줄곧 가족과의 재회를 염원하다 1956년 영양실조 등으로 생을 마쳤다. 그의 나이 40세 때다.

내년은 이중섭이 탄생한 지 100년이 되는 해다. 서귀포시는 2016년 이중섭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사전행사로 지난 18일부터 오는 10월11일까지 이중섭미술관 기획전시실에서 특별기획전 ‘그리운 제주도 풍경’을 마련하고 있다. 특별기획전에는 이남덕 여사가 1952년 일본 친정에 보냈던 미공개 편지문, 부인과 두 아들이 일본으로 입국했던 당시 입국증명서, 결혼 전인 1944년 이중섭이 원산에서 아내에게 보낸 전보, 1956년 이중섭의 사망통지서 등이 전시되고 있다. 또 1950년대 한국전쟁 중 작품활동을 했던 당시의 사진들과 그의 지인인 고(故) 구상 시인이 이중섭에 대해 쓴 글도 접할 수 있다. 이중섭은 1946년 친구인 구상의 시집 ‘응향(凝香)’의 표지화를 그려 두 사람이 같이 공산주의 당국으로부터 고통을 받기도 했다.

이중섭이 가족과 함께 서귀포에 머문 기간은 1951년 약 11개월. 이중섭은 서귀포에 머물면서 ‘서귀포의 환상’ ‘섶섬이 보이는 풍경’ ‘물고기와 노는 세아이’ 등의 명작을 남겼다. 서귀포시가 천재화가 이중섭을 기리며 관광자원화를 모색한 시기는 1996년. 당시 오광협 서귀포시장은 한국을 대표하는 화가인 이중섭이 살았던 초가 일대를 매입해 ‘이중섭 거리’로 명명했다. 이듬해에는 그가 서귀포에 거주할 때 살았던 집과 부속건물을 복원해 이중섭 거주지와 그의 호인 대향(大鄕)을 딴 전시실을 꾸몄다. 당시 지역의 일부 문화예술인은 이중섭을 기리는 것을 반대했다고 한다. 서귀포 출신이 아니라는 게 이유다. 오 전 시장은 관광자원이 될 수 있다며 설득했고, 그 이후 이중섭 거리는 지역의 관광명소가 됐다. 서귀포와 이중섭을 연결시켰던 오 전 시장은 현재 이중섭 탄생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 고문을 맡고 있다.

이중섭미술관은 지난 2002년 12월 문을 열었다. 미술관에는 이중섭의 작품과 그와 관련한 각종 서적 및 자료, 제주 거주 작가 작품 등이 전시되고 있다. 인근에는 이중섭미술관 창작스튜디오도 마련해 입주 작가의 창작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미술관은 이중섭의 가치가 재조명되면서 관람객이 많이 찾고 있다. 시에 따르면 미술관 관람객은 2011년 12만3103명에서 2012년 12만7326명, 2013년 17만9047명, 2014년 24만5231명으로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올해도 지난달 말 현재 14만4475명이 방문했다. 이중섭미술관은 지난해 12월 이중섭 원화작품 은지화 2점을 구입한데 이어 올해에도 10억원을 들여 은지화 7점, 엽서화 4점, 유화 1점 등 12점을 구입했다. 최근에 구입한 원화작품들은 내년 이중섭 탄생 100주년 기념 특별전시회 때 전시된다.

이중섭은 서귀포 출신이 아니다. 그러나 그는 서귀포에서 예술혼을 불태웠고 서귀포를 사랑했다. 서귀포를 소재로 한 명작도 많이 남겼다.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영화배우 등 유명인들이 잠깐 다녀간 흔적까지도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는 요즘, 서귀포시가 한때 지역에 머물며 작품활동을 했던 천재화가를 기리는 것은 좋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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