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 사실 전달 기능이면 심판
지역 위해 대중 향도하면 감독
문제는 ‘최고의 선’이 바뀐다는 점

7년새 자본 대한 도민 인식 변화
돌 맞기 싫은 것도 언론 소극적 원인
소신 목소리 이래저래 힘들어

신문과 방송 등 매스미디어의 기능은 다양하다. 환경감시·상관조정·사회유산전수·오락기능 등이 대표적이다. 이 가운데 지역언론의 고민이 있다. 환경감시기능과 상관조정기능 사이에서의 위치 잡기다. 사회 현안의 사실 전달에 충실해야 하는지, 아니면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하는지 판단이 힘들 때가 없지 않다.

스포츠에 비유한다면 환경감시기능은 심판이고, 상관조정기능은 감독이다. 사실(fact)을 제대로 전달해 수용자들인 공중(公衆)이  ‘최고의 선(善)’이 무엇인지 합리적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 다면 지역언론은 현안의 ‘심판’일 수 있고, 지역에서 최고의 선을 달성하기 위해 공중을 이끌어 향도(嚮導)하려 한다면 ‘감독’이 된다.

그런데 최고의 선에 문제가 있다. 스포츠의 경우는 쉽다. 이기면 그만이다. 언론의 관점에선 그렇지 않다. 사회현상에서 ‘최고의 선’이 무엇인지 누구도 장담할 수가 없다. 세월이 가면 모든 게 달라진다. 상황도 바뀐다. 어제의 적(敵)이 오늘의 적이 아닐 수 있고, 오늘의 선(善)이 내일의 선이 아닐 수 있다.

1990년대 전후 개발의 바람 속에서 제주지역의 최고의 선은 ‘내 땅 지키기’였다. 제주 땅 지키기를 외치는 사람은 일제시대 애국자처럼 진정 제주를 사랑하는 사람으로 평가됐다. 1990년대 초 모 골프장 건설 당시 반대시위를 벌이던 지역 주민들이 경찰에 연행되자 사회면 탑기사로 ‘불의에 맞선 의인들’처럼 보도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불과 7~8년 뒤 IMF사태가 터지면서 지역사회의 ‘최고의 선’이 달라졌다. 완전히는 아니더라도 외지자본에 대한 시각이 확연히 바뀌었다. 관광객이 줄고 농업이 어려워지니까 들리는 소리가 “외지자본 유입을 통해서라도 개발을 해야 한다”였다.

행정은 중국자본 유치 등의 보도자료를 자랑스레 내고 지역신문 등 언론들도 거부감 없이 보도했다. 주민들은 왜 우리 지역에는 투자가 이뤄지지 않느냐는 식으로 행정에 따질 정도였다.

강산이 변한다는 10년도 못된 시간에 제주 사회가 지향하는 최고의 선, 아니면 다수의 선이 그렇게 바뀌었다. 그래서 지금 얘기하는 최고의 선이 10년도지나지 않아 최고의 선이 아닐 개연성이 없지 않다.

해군기지 문제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지역언론이나 행정이 과정을 제대로 치유하지 못하는 사이 제주민군복합형관광미항, 즉 해군기지는 이제 결과를 향해 가고 있다. 반대에도 불구, 공사가 진행돼 준공을 앞두고 있다.

10년 뒤 어떤 평가가 나올까. “이왕 들어설 거 그냥 놔둘 걸. 해군들이 들어오니 마을도 활기차고 경기도 좋아진 거 같다. 반대하며 지역역량만 낭비했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면 “거봐, 인구는 유입됐지만 지역사회가 군바리문화로 바뀌어버렸네. 콘크리트로 쳐 발라 강정 앞바다 경관을 망쳐놓은 것은 어떻고. 좀 더 치열하게 반대했어야 했는데”라는 탄식이 나올 수도 있다.

그래서 지역언론은 해군기지를 허용하자, 아님 하지 말자 영리병원은 된다 또는 안된다 자신 있게 논조를 펼치지 못하고 있다. 즉 상관조정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안타깝게도 행정의 발표와 NGO의 반발을 중계하면서 언론의 초급적 기능인 환경감시기능에 머물고 있는 게 현실이다.

지역언론이 ‘우유부단’한 또 다른 이유는 날아올게 뻔한 돌을 맞기 싫다는 것이다. 기사 내용이 지역의 최고의 선을 위해 확실하다고 하더라도 대다수 도민,  축소해서 각각의 이해집단들은 자신들의 이익과 상반되는 보도가 나가는 순간 그 언론사를 ‘원수’ 취급한다. 전화 항의는 기본이고 신문사를 찾아오고 생난리를 친다. “너 죽을래. 아님 우리 죽는 꼴 보려고 작정했구나” 수준이다.

이러다보니 언론도 침묵의 나선효과에 묻어가려는 소극적 태도가 나타난다. 한마디로 어렵고 복잡하게 가지 말자는 것이다. 가끔은 돌을 맞더라도 자신감 있게 사회적 이슈에 대해 이해단체는 물론 NGO와도 맞장을 뜨는 자세로 ‘아니’ 또는 ‘맞다’고 주장하고 싶다. 그러나 현실은 쉽지가 않다. 이것이 지역언론, 아니 대한민국 언론계 전체의 한계가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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