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따라 이야기따라 <19>
한센병 치료하던 구질막터 있던 '서해안로'

▲ 용두암에서 시작해 해안로를 따라 나 있는 서해안로. 이 곳은 조선 4대 임금인 세종 시절 제주목사로 발령받았던 기건 목사가 한센병 환자를 치료했던 구질막 터가 있었던 자리다. 지금은 구질막 터가 있었음을 보여주는 비석만이 남아 있다.

과거 ‘나병’ 또는 ‘문둥병’이라고 불리던 한센병. 한센병은 6세기 쯤 처음 발견됐으며, 현재는 전세계적으로 24개국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에서 연간 1만명당 1건 미만으로 발생한다고 한다. 1980년대만 하더라도 전세계에서 520만여명 정도가 걸렸었다고 하니, 이때와 비교하면 많이 줄어든 숫자다. 한센병은 유전이 아니지만, 강제로 격리되거나 여자의 경우 낙태 등의 의료 행위가 행해졌다고 한다. 제주도 역시 마찬가지다. 제주에서는 한센병 환자를 ‘용다리’라 불렀는데, 이들은 해변에서 방치됐다고 한다.

제주시 용담동을 시작으로 쭉 이어지는 해안로를 따라가다, 도두동 모 카페에 멈춰섰다. 카페 근처에 한센병 환자들을 치료했던 ‘구질막’ 터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개발로 인해, 옛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차로 2~3분은 더 가서야 ‘구질막 터’라는 비석을 겨우 찾을수 있었다. 도로명 주소로 ‘서해안로’로 불리는 이 인근은 대한민국에서는 처음으로 ‘국립한센병치료소’가 있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조선 4대 임금인 세종 시절, 기건(?~1460)은 한센병이 유행하던 당시 제55대 제주목사로 발령 받았다. 기건 목사는 관내를 순찰하다가 바닷가에 이르렀는데, 바위 밑에서 신음소리가 나는 것을 듣고 살펴보니 한센병 환자가 있었다고 한다. 이에 기건목사는 제주목과 정의현, 대정현에 한센병 환자를 치료하는 구질막(救疾幕)을 설치, 이들에게 고삼이라는 풀의 뿌리를 달인 고삼원(苦蔘元)을 먹이고, 바닷물에 목욕을 시키는 등 치료에 힘썼다고 한다. 기건목사는 전문적이고 지속적인 한센병 치료를 위해 1445년 조정에 다음과 같이 장계(狀啓)를 올렸다.

‘본주(本州)와 정의·대정에 나병(癩病)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한센병에 걸린 자는 괴로움을 견디지 못해, 바위 벼랑에서 떨어져 생명을 끊으니 참으로 불쌍합니다. 신이 세 고을에 각각 병을 치료하는 장소를 설치하고 병자를 모아서 의복과 식량과 약물을 주고, 목욕하는 기구를 만들어서 치료하고 있습니다. 현재 나병 환자 69인 중에서 45인이 나았고, 10인은 아직 낫지 않았으며, 14인은 죽었습니다. 세 고을 중 각각 한 사람을 군역을 면제해 의생과 더불어 오로지 치료에 종사하게 하고, 의생도 또한 채용하는 것을 허락해 권장하게 하소서.(중략)”

▲ 구질막 터 비석.

임금으로부터 허락을 받게 된 기건은 본격적으로 환자를 돌봐, 대부분이 한센병에 나았다고 한다. 그 뒤 다른 곳으로 부임하게 되자 환자들이 기건 목사를 '눈물'로 떠나보냈다고 한다. 기건목사가 떠난 뒤 한센병 환자들이 어떻게 됐는지에 대해서는 전해지고 있는게 없다. 또, 정의현과 대정현에 설치됐던 구질막의 위치는 아직까지도 파악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400여년이 지난 1909년 1909년 얼빈박사가 부산에 나병원을 설립한다는 내용에서부터 ‘한센병’의 대한 이야기가 다시 시작되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제주시 도두동 유래

일제 강제이주의 아픈 역사 간직

매년 8월 도두 오래물 축제 열려

6월말 현재 주민 2800여명 거주

도두동은 제주 섬의 북쪽, ‘섬의 머리’라는 뜻을 가진 ‘도두(島頭)’에서 유래했다는 설, 제주성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큰 길, 즉 ‘한길의 머리’에서 따왔다는 얘기가 있지만 확실한 유래는 알려지지 않았다. 동부, 중부, 서동, 사수동, 다호동, 자포동, 오도롱 등 7개 마을로 구성됐던 도두동은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에 따라 ‘도두리’라는 명칭으로 바뀌었다.

1943년 도두2리 주민 약 150세대는 일제가 군용 비행장을 설치하면서, 강제이주를 당한 아픈 역사도 간직하고 있다. 이 곳은 1955년 도두동으로 승격됐으며, 큰 행사로는 ‘도두 오래물 축제’가 있다. 도두동은 매월 8월쯤 행사를 열고 ‘오래물’을 이용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선보이고 있다. 오래물은 용천수로, 물의 맛이 매우 달고 수맥은 오방으로 솟는다는 뜻에서 이 같이 불린다고 한다. 지난 6월말 기준 도두동에는 2800여명이 살 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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