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 유산’ … 國定교과서 등
나라 안팎서 불붙은 역사논쟁
이념투쟁·政爭 변질 ‘소용돌이’

‘비정상의 정상화 - 親日교과서’
여·야, 현격한 시각차 드러내
“역사는 그 누구의 전유물도 아니”

“과거에 대한 인식에서 미래가 결정된다”고 말한 이는 영국의 정치철학자이자 사회학자인 토머스 홉스였다. 그는 서구 근대정치철학의 토대를 마련한 ‘리바이어던’의 저자로도 유명하다.

역사(歷史)에 대한 해석은 시대마다 달랐다. 로마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어제 일어난 것은 오늘 일어나고, 또 내일에도 일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로마제국이 전성기를 지나 쇠퇴기로 접어들 때의 역사해석이다.

아놀드 토인비도 “역사는 계속 반복된다”(역사 순환론)고 주장했다. 1,2차 세계대전의 폐해로 사회 전반에 비관주의가 팽배했던 시절이었다. 반면에 헤겔은 “역사는 자유를 향해 끊임없이 진보한다”는 ‘역사 발전론’을 설파(說破)했다. 이 같은 역사에 대한 인식과 해석은 그 시대가 처한 환경, 혹은 수용자의 입장에 따라 부침을 거듭해왔다.

바야흐로 ‘역사 전쟁(戰爭)’이 불붙고 있다. 한·중·일 3국은 ‘유네스코 유산’을 놓고 치열한 싸움을 전개 중이다. 그런가 하면 대한민국은 ‘국사(國史)교과서’를 둘러싼 한판 역사전쟁이 시작됐다.

물론 한중일 간 해묵은 역사논쟁은 새삼스러운 게 아니다. 일본 우익의 끊임없는 망언(妄言), 중국의 ‘한국 고대사 빼앗기’인 동북공정(東北工程)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최근의 싸움은 중국의 난징대학살 문건이 유네스코(UNESCO)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며 촉발됐다. ‘난징대학살 문건’은 일본 군대가 1937년 12월 난징(南京) 점령 후 시민과 무장 해제된 중국 군인들을 학살한 사실과 1945년 이후 전쟁 범죄자의 재판 관련 기록물을 아우르고 있다. 일본 정부가 발끈하고 나서자 중국은 “침략전쟁의 잔혹성을 인식하고 역사를 되새기는 계기를 마련해줬다”고 일축했다. 장소만 유네스코로 바뀌었을 뿐, 역사를 둘러싼 한중일의 싸움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욱 심각한 일은 국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역사교과서 국정화(國定化)’ 문제다. 이로 인해 나라 전체가 소용돌이 속에 빠졌다. 여·야는 물론 보수와 진보세력이 ‘이념전쟁’에 돌입했으며, 국민들 또한 처한 입장에 따라 사분오열(四分五裂)됐다. 국민통합을 이루겠다고 내놓은 정부의 조치가 오히려 국론을 분열시키고 있는 것이다.

현재 여와 야의 시각차는 너무나 현격하다. 야권은 정부의 국정화 역사교과서를 ‘친일(親日)·독재 미화 교과서’이자 ‘역사 쿠데타’라 규정하고 장외투쟁에 돌입했다. 국정화 저지를 위해 1000만명 반대 서명과 함께 내년 예산안 및 노동개혁 법안까지 보이콧 할 수 있다는 으름장도 놓고 있다. 절대 양보할 수 없다는 각오다.

이에 반해 여권은 “야당이 ‘군사쿠데타의 딸이 역사쿠데타를 한다’고 말하지만 정작 역사쿠데타를 한 사람은 대한민국의 현대사를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한 ‘실패(失敗)한 역사’로 규정한 노무현 전 대통령”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역사교과서들이 이념적으로 좌편향돼 역사 왜곡과 자기비하 등 부정적 역사관을 심어주고 있다며, 균형잡힌 통합교과서는 ‘비정상의 정상화’를 위한 조치라는 것이다.

필자는 ‘국정교과서’ 세대다. 어릴 적 초등교 시절의 교과서에서 ‘북한은 늘 늑대’ 등으로 묘사됐다. 중고시절은 ‘유신(維新)만이 살길이다’를 귀가 따갑게 들으며 성장했다. 하수상한 시절인지라 그땐 그러려니 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당시의 우리 세대는 획일화된 교육과 역사왜곡의 희생자였다. 그때의 아픈 경험들이 훗날 독재(獨裁) 타도 등 민주화운동 등으로 분출된 것은 어쩌면 역사의 아이러니다.

때문에 개인적으론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득보다 실이 훨씬 클 것으로 생각한다. 한 가지 간과(看過)하지 말아야 할 것은 현행 검인정 교과서들이 대한민국엔 지나치게 엄격하고 북한에는 관대하게 기술함으로써 편향성(偏向性) 논란을 자초하고, 국정교과서의 빌미를 준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는 점이다.

여권이나 야권은 역사교과서를 더 이상 이념투쟁과 정쟁으로 변질시켜선 안 된다. 그것은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이자 의무다. 혹시 토머스 홉스를 잘못 이해해 ‘과거에 대한 인식을 바꿔 자신들이 원하는 미래를 만들고자 하는’ 유혹(誘惑)이 있다면 한시바삐 벗어나길 바란다. 역사는 결코 그 어느 누구의 ‘전유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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