敵까지 중용하는 통합정치로
‘貞觀의 治’ 일궈낸 이세민
신하 쓴소리·군주 대범함 조화

4大개혁 실종·역사교과서 파문
나라 전체가 첨예한 갈등 양상
朴 대통령에게 과연 ‘위징’은?

당(唐)나라의 제2대 황제였던 태종 이세민은 중국 역대 황제 중 최고의 ‘명군(名君)’으로 꼽힌다. 그가 다스렸던 시대를 ‘정관(貞觀)의 치(治)’라고 한다.

유방이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의 항우를 제압하고 천하의 패자가 돼 한(漢)나라를 건국한 이면엔 유능한 책사인 장량이 있었다. 그리고 이세민이 ‘정관의 치’를 이룬 바탕에는 여러 현신(賢臣)이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위징(魏徵)이다.

당초 위징은 이세민의 형인 태자 이건성의 책사(策士)였다. 그는 이세민의 인기와 권력을 불안히 여긴 나머지 그를 선제공격해서 독살해야 한다고 진언했다. 하지만 이건성은 이를 흘려들었고, 결국 ‘현무문의 변’에서 동생인 이세민에게 살해당한다.

역변(逆變)을 일으킨 이세민 앞에 위징이 서게 됐다. “너는 무엇 때문에 우리 형제 사이에 끼어들었나?” 위징이 답했다. “만일 태자(太子)께서 제 말을 들었더라면 오늘과 같은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태자께 충성을 다한 것이 무슨 잘못입니까?”

이세민은 황제가 되기 전 ‘권력욕의 화신’이었다. 왕위에 눈이 멀어 형과 아우까지 참살한 비정한 인물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에겐 특별한 그 무엇이 있었다. 바로 ‘담대함’이다. 비록 자신을 죽이려한 적(敵)이었지만 위징의 능력을 알아보고 그를 중용하는 대범함을 보였다.

역사는 이러한 당태종과 위징을 ‘현군직신(賢君直臣)’으로 평가한다. 글자 그대로 현명한 군주와 직언하는 신하라는 뜻이다. 곧기만 한 신하가 불편함에도 옆에 두고 그 지혜를 배우고자 귀를 기울였던 태종, 목이 달아날지언정 군주의 면전에서 쓴 소리를 멈추지 않았던 위징 같은 신하가 있었기에 ‘정관의 치’도 가능했다.

현군이라 하더라도 늘 마음이 한결같지는 않았을 것이다. 언젠가 위징은 자신의 직언(直言)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태종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그럼 저를 충신이 아니라 양신이 되게 하소서”

그는 충신(忠臣)을 이렇게 설명했다. ‘군주의 미움을 사서 죽임을 당하게 되고 그로 인해 군주에게 오명을 덮어쓰게 하며 마침내 나라와 가문이 망한 뒤 헛된 명성만 남는 신하’. 반면에 양신(良臣)은 ‘군주와 나라를 잘 이끌어 스스로 부와 명성을 누릴 뿐만 아니라 군주에게도 위세와 명망을 자손만대 이어지게 하는 신하’라고 해석했다. 위징은 양신이 되는 데는 한 가지 원칙만 있으면 된다고 말한다. 그것은 백성들을 행복하게 한다는 믿음이라고….

태종이 물었다. “군주가 어떻게 하면 밝아지고 어떻게 하면 어두워지는가?” 위징의 대답은 단호했다. “신하들의 말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면 밝아지고, 편벽(偏僻)하게 한 신하의 말만 믿으면 어두워지는 것입니다” 군주가 신하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비판과 충고를 새겨들을 때라야 비로소 태평성대가 열린다는 것이다.

위징이 죽었을 때 태종은 “짐은 거울 하나를 잃고 말았다”며 몹시 슬퍼했다고 한다. 그리고 살아생전 그토록 반대하던 고구려 침공을 위징이 죽은 이듬해 감행했던 태종은 참담한 패전(敗戰)을 곱씹으며 장탄식했다. “위징이 살아있었다면 이런 일을 하도록 내버려두지는 않았을 텐데…….”

최근 대한민국의 현실을 목도하며 불현듯 연상되는 것이 바로 당 태종과 위징의 관계다. 이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과연 ‘위징’은 있는가? 란 물음으로 이어진다.

현재 우리의 상황은 그야말로 ‘혼돈(混沌)’ 그 자체다. 온갖 것들이 한데 뒤섞이어 갈피를 잡을 수 없을 정도다. 이 과정에서 공공·노동·금융·교육 등 이른바 4대 구조개혁은 실종됐고, ‘역사교과서 국정화(國定化)’ 파문으로 인해 나라 전체가 둘로 나뉘어 첨예한 갈등 양상을 보이고 있다.

대통령의 일갈(一喝)에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일찍이 내쳐졌는가 하면 ‘무대(무성대장)’ 또한 제 한 몸 지키기에 여념이 없다. 그러다보니 정부와 여당은 일렬 종대로 도열한 가운데 ‘지엄한 분부’만 기다리는 중이다. 간혹 비판의 소리도 들리나 정곡(正鵠)을 찌르기보다는 자신의 존재 가치를 부각시키는데 급급한 실정이다.

서로의 아집(我執)과 독선(獨善) 속 대화와 소통은 찾을 길이 없다. 백성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군주도 없고, 위징과 같은 쓴소리꾼도 없는 게 오늘 ‘대한민국의 비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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