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군정 종식’ 상징 巨山
큰 족적 남기고 역사 속으로
‘過에 묻혔던 功’ 재평가 활발

개혁·소통·리더십 등 ‘정치유산’
외면하지 말고 타산지석 삼아
朴 대통령 ‘화합과 통합’의 길로

민주화운동과 군정(軍政) 종식의 상징인 김영삼 전 대통령이 역사 속으로 스러져 갔다. 지난 26일 국회의사당에서 엄수된 국가장(國家葬) 영결식을 마지막으로 영원한 안식에 들어간 것이다. 이날 하늘도 흐느꼈는지 영결식장엔 눈발이 흩날렸다.

YS는 6년 전 작고한 김대중 전 대통령(DJ)과 더불어 한국 현대정치사의 산증인이자 거목이었다. 그리고 이제 아호인 거산(巨山)만큼이나 큰 족적을 남기고, 평생 ‘라이벌’이자 ‘동지’였던 DJ 곁으로 갔다.

김영삼 전 대통령을 향한 추모 열기는 예상보다 뜨거웠다. ‘조문(弔問) 정국’이란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살아생전에 저평가됐던 YS에 대한 인식도 몰라보게 달라졌다.

이는 지난 24~26일 실시된 한국갤럽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잘 드러난다. 서거(逝去)를 계기로 그에 대한 호감도는 올해 3월 19%에서 8개월 여만에 32%포인트나 급등한 51%로 나타났다.

우리나라 정치 발전에 공헌했다는 답변도 74%였다. 공헌도는 ‘민주화운동/독재항거’(37%)를 가장 많이 꼽았다. 다음으로 ‘금융실명제’와 ‘군부독재 청산/하나회 척결’, ‘문민정부 수립’ 등이 뒤를 이었다. ‘김영삼 전 대통령’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을 묻는 질문에도 ‘민주화운동’이 으뜸이었고, YS의 큰 허물로 꼽히는 ‘IMF’가 2위였다.

이 같은 현상을 지켜보면서 문득 덩샤오핑(鄧小平)의 ‘역사공과론’이 떠올랐다. 문화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마오쩌둥(毛澤東)에게 목숨을 잃을 뻔한 덩샤오핑은 마오의 역사적 과오만 들춰내지 않았다.

그는 집권 과정에서 “마오 동지의 공(功)은 7이요, 과(過)는 3이다”라고 선언했다. ‘역사공과론’을 통해 찢겨진 국민을 통합하고 슬기롭게 중국의 미래를 만들어나갔다. 역사 논쟁은 공과 과를 함께 보는 눈을 가져야 한다는 것으로, 최근 우리의 ‘역사교과서 논쟁’과 관련해 시사(示唆)하는 바가 매우 크다.

YS도 우리 사회에 ‘화합과 통합’이란 유훈(遺訓)을 남기고 떠났다.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은 “고(故) 김영삼 대통령의 삶은 그 누구보다 공과가 분명했다. 그 평가는 역사가, 그리고 국민들이 내릴 것”이라는 논평을 내놨다. 이어 “마지막 가는 길에 우리에게 던져준 ‘화합(和合)과 통합(統合)’의 화두를 깊이 되새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의 논평은 자연스레 박근혜 대통령으로 옮아갔다. “우리 사회는 지금 극심한 불통과 분열에 시달리고 있다”며 민주주의의 근본적 위기에 대한 성찰을 다시 한번 요구받고 있다고 밝힌 것. 이름만 거론하지 않았을 뿐이지 박 대통령을 겨냥한 말이었다.

실제로 YS의 서거와 그에 대한 재평가는 한국 사회와 정치, 리더십의 현주소를 비춰보는 ‘거울’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민주주의와 역사(歷史), 통합과 소통 등 YS의 ‘정치적 유산’들은 박근혜 정부의 모습과 비교되며 강한 ‘대비 효과’를 불러일으키는 중이다.

그 첫째가 과거 반독재·민주화 투쟁을 통해 어렵게 쌓아올린 민주주의와 인권이 박근혜 정부 들어 퇴행(退行)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다. 예컨대 현 정부서 추진하는 역사교과서 국정화의 경우 김영삼 정부에서 이뤄진 ‘역사 바로 세우기’를 거꾸로 되돌리려는 시도란 지적이다.

YS의 소통 리더십과 통합형 용인술도 박 대통령과 비교되고 있다. ‘소통(疏通)’은 김 전 대통령의 최대 장점으로 손꼽힌다. 반면에 박근혜 대통령의 이미지는 어느새 ‘불통(不通)’으로 국민들에게 각인되고 있다. ‘인간적인 여백(餘白)’이 있고 없음에 따라 나눠진 차이다.

서거 이후 YS의 개혁과 소통, 리더십이 갑작스레 재조명된 이유는 뭘까.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한 쪽은 아이러니하게도 박근혜 정부라는 말이 나온다. 최근 더욱 불거지고 있는 여러 퇴행성 행태들이 그 대항마(對抗馬)로 ‘죽었던 YS’를 되살리고 있다는 것이다. 일각에서 ‘죽은 제갈공명이 산 사마중달을 이겼다’는 고사(故事)까지 등장하는 이유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마지막 가는 길은 결코 외롭지 않았다. YS에 대한 추모 열기는 지역과 세대, 계층을 막론하고 우리 모두가 ‘화합과 통합’에 나서길 바라는 국민적 요구였다.

박근혜 대통령도 이제 ‘고집’을 꺾고 여·야당은 물론 국민들을 고루 껴안으며 내일을 말해야 한다. 범국민적 ‘화합과 통합’ 없이는 대한민국의 미래 또한 없다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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