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주민 8년여 투쟁 불구
海軍기지 올 연말 완공 예정
강정 하늘과 바다 ‘을씨년’

수백년 마을공동체 완전 파탄
화해와 相生으로 문제 풀어야
자칫 ‘제 2의 4·3’될 수도

제주해군기지의 역사는 지난 199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해 12월 국방부가 신규 건설사업 필요성을 제기한 이후 지금까지 22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현재 94%의 공정률 속 올해 말 완공될 예정인 가운데 강정의 하늘과 바다는 겨울날씨를 닮아 을씨년스럽기만 하다.

본격적인 해군기지 건설은 방위사업청이 2006년 5월 ‘2014년까지 제주에 해상기동전투단 수용이 가능한 해군전략기지 조성 계획’을 발표하고, 7월 제주도에 해군기지 TF팀이 구성되면서 시작됐다.

당초 후보지로는 안덕면 화순지역이 유력했다. 하지만 곧 반대의 벽에 부딪혔고, 남원읍 위미리가 자발적 유치를 선언했으나 이 역시 주민 반대로 무산됐다. 이때 등장한 곳이 바로 강정마을이다.

강정마을회는 2007년 4월26일 임시총회를 열고 해군기지 유치를 결정했다. 문제는 당시 마을회장 등 일부 주민만이 참석해 유치를 결정했다는 점이다. 민-민과 민-관 갈등의 시발점(始發點)이었다. 해군기지와 관련 그동안 줄기차게 제기됐던 ‘절차상 하자(瑕疵)’ 문제도 여기서 비롯됐다.

급기야 강정마을은 8월10일 임시총회에서 전 마을회장을 갈아치우고 새롭게 강동균씨를 선출했다. 그리고 열흘 뒤인 8월20일 해군기지 유치 찬·반 투표를 실시해 총 725명 중 680명의 반대로 ‘해군기지 유치 반대’를 결의했다. 또한 2008년 11월11일 마을 임시총회에서 ‘07년 4월26일 임시총회 무효(無效)’를 참석자(418명) 만장일치로 채택하는 한편 유치건의 무효 확인 및 행정절차 정지 청원을 접수시켰다.

그러나 주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해군기지 사업을 밀어붙였다. 해군은 동년 12월26일 항만공사 입찰공고를 냈다. 국방부도 이듬해인 2009년 1월14일 국방군사시설사업 실시계획을 승인 고시했다.

이에 대해 강정마을회는 같은 해 4월20일 국방군사시설사업 실시계획 승인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하기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해군은 아랑곳하지 않고 2010년 1월 항만공사를 착공했다. 이때부터 3100여일, 8년에 걸친 강정마을의 해군기지 반대 투쟁이 본격화 된다.

강정마을의 반대 투쟁은 처절했고 눈물겨웠다. 2007년부터 최근까지 반대투쟁을 벌이다 연행된 지역주민과 활동가만 700명에 가깝다. 이 가운데 550여명이 기소되고 200여명은 실형처벌을 받았다. 벌금형 400건에 금액 또한 4억원에 육박한다. 졸지에 전과자(前科者)로 전락했을 뿐만 아니라 큰 경제적 압박을 받고 있다.

더욱이 제주해군기지 공사를 담당했던 건설사들이 해군 측에 항만공사 지연에 따른 손실보상금 수백억원을 청구했고, 해군은 주민들에게 구상권(求償權)을 청구해 논란을 키우고 있다. 이와 함께 행정대집행 비용납부 명령 공문까지 마을회에 전달해 주민들을 압박(壓迫)하고 있는 상태다.

하지만 개인 신상이나 금전적 손실보다 더 큰 상처는 따로 있다. 설촌(設村)된 지 수백년이 넘은, 그것도 ‘일(一) 강정’이라 불리며 평화스럽던 마을공동체가 송두리째 파탄 난 것이다. 형제와 친척이 서로 갈라서고 이웃 사람들끼리 적대시하는…. 전쟁 통에도 없었던 미증유의 일들이 국책사업 때문에 벌어졌다. 그 징조는 마을의 상징이자 공동 구심체였던 ‘구럼비’가 파괴될 때부터 예견됐었다.

그동안 구겨진 강정 주민들의 자존심을 회복시키기 위한 노력들이 이어져 왔지만 진전된 것은 하나도 없다. 원희룡 지사의 특별사면 건의도, 각계의 요구도 정부에 의해 묵살됐다.

강정 문제는 법과 원칙을 떠나 화해(和解)와 상생(相生) 차원에서 해법을 마련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처지를 바꾸어 생각하는 ‘역지사지(易地思之)’, 맺은 사람이 꼬인 매듭을 푸는 ‘결자해지(結者解之)’가 그 무엇보다 필요하다.

제주도민 가운데 많은 사람들은 ‘강정’을 보며 ‘4·3’을 떠올린다. 무모한 공권력의 행태 등 해군기지를 둘러싼 일련의 과정이 60여년 전의 ‘4·3사건’과 너무나 흡사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시인 김경훈은 이렇게 외친 바 있다. “누가 감히 강정을 4·3이 아니라고 말하는가/4·3에서 평화와 인권을 배웠다는 이들이여/인권이 낭자히 유린되고 평화가 처참히 깨지는데/왜 강정은 4·3이 아니라고 하는가…”

강정마을에 평화(平和)는 과연 언제쯤 찾아들 것인가. ‘강정’이 ‘제2의 4·3’이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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