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상황이 온통 어지럽다”
교수신문 ‘올해의 사자성어’
사실상 朴 대통령 겨냥 비판

청년실업 등 경제위기 불구
정치권은 집안싸움만 요란
‘네 탓 아닌 내 탓’ 되새길 때

교수신문은 2015년 올해의 사자성어로 ‘혼용무도(昏庸無道)’를 선정했다. ‘나라 상황이 마치 암흑에 뒤덮인 것처럼 온통 어지럽다’는 뜻이다.

‘혼용’은 사리에 어둡고 어리석은 임금을 지칭하는 혼군(昏君)과 용군(庸君)을 함께 일컫는 말이다. 논어의 천하무도(天下無道)에서 유래한 ‘무도’는 세상이 어지러워 도리가 제대로 행해지지 않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를 추천한 이승환 고려대 교수(철학)는 “연초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로 민심이 흉흉했으나 정부는 이를 통제하지 못한 채 무능함을 드러냈다. 중반에는 여당 원내대표(유승민 의원)에 대한 청와대의 사퇴압력으로 삼권분립과 의회주의 원칙이 크게 훼손됐고, 후반기 들어서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으로 국력만 낭비했다”고 피력했다. 사실상 박근혜 대통령을 겨냥한 신랄한 비판이었다.

혼용무도 외에도 다양한 사자성어(四字成語)가 후보에 올랐다. 두 번째로 높은 지지를 받은 것은 ‘겉은 옳은 것 같으나 속은 다르다’는 사시이비(似是而非)였다. 사회 각 분야에서 올바르게 큰 방향을 잡은 듯 했지만 결국 자기이익만을 대변하는 결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또 ‘못의 물을 모두 퍼내어 물고기를 잡는다’는 뜻인 갈택이어(竭澤而漁), 그리고 ‘달걀을 쌓은 것 같이 위태로운 형태’라는 위여누란(危如累卵)이 그 뒤를 이었다. 정치 지도자들이 목전의 이익만을 추구해 미래의 생산적 기회를 상실하는 등 나라를 망치고 국력을 고갈시키는 주범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이다.

이 같은 비판적인 사자성어들은 2015년 어지러웠던 우리 사회의 단면(斷面)을 압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우선 정치적으론 ‘십상시(十常侍) 파동’을 비롯 ‘성완종 리스트’ 파문이 정치권을 뜨겁게 달궜다. 전 정권의 비리로 지목되던 사자방(4대강 사업, 자원외교, 방산비리) 등의 의혹도 제대로 해명하지 못 했다.

경제적인 면에서도 괄목할 만한 성과는 없었다. 청년실업률은 외환위기 이후 최악의 상태다. 박 대통령이 취임하던 해 900조원이던 가계 빚이 1200조원으로 크게 늘면서 소시민들은 무거운 빚더미를 짊어진 채 살고 있다. 우리 사회 양극화(兩極化) 해소의 효과적인 처방이자, 패자(敗者)를 배려하고 보호하려던 경제민주화는 잊혀진지 오래다. 국제적인 경제외교 흐름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 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 모든 것을 대통령 혼자에게 돌려서는 안 되지만 상당부분 그 책임이 있다. 박 대통령은 최근 노동개혁 및 경제활성화법 처리 지연과 관련 “속이 타들어가고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있다”고 토로한 바 있다. 그 애타는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진정으로 나라와 국민을 위해서라면 국회(國會)만 탓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 먼저 내려놓고 여야 정치 지도자들과 만나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눠야 한다. 더욱이 지금 대통령의 발목을 잡고 있는 ‘국회선진화법’은 박 대통령이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 시절 당내 반대에도 불구하고 찬성을 독려하며 통과시킨 법이다. 자업자득(自業自得)과 자승자박(自繩自縛)이란 말이 나오는 이유다.

지금 시중엔 때 아닌 ‘진실한 사람’론이 회자되고 있다. 박 대통령이 올해 마지막 국무회의에서 “들어갈 때 마음과 나올 때 마음이 한결같은 이가 진실한 사람”이라는 정의를 내리면서 증폭됐다. 지난달 10일 “진실한 사람들이 선택받을 수 있도록 해 달라”는 발언에 이은 ‘진실 시리즈 2탄’이다. 이 자리엔 총선 출마를 위해 내각을 떠나는 장관들도 배석했다.

이후 정치판에선 진박(진실한 친박) 논란이 한창이다. 특히 TK(대구·경북)을 중심으로 대통령과의 친밀도를 내세우는 일이 부쩍 잦아졌다. 심지어 ‘진박(眞朴)-중박(中朴)-망박(望朴)-비박(非朴)’ 등 인도의 카스트 제도에 빗댄 ‘친박 4대 계급론’이 나돌 정도다. 21세기 대명천지에 벌어지고 있는 우리 정치의 서글픈 자화상이다.

과연 누가 ‘진실한 사람’인가. 최경환 전 부총리와 조윤선 전 청와대 정무수석 등은 현재 박 대통령과 가장 가까운 사람으로 불린다. 그러나 이들 모두 한때 이회창 전 총재의 특보였고, 대변인이었음을 감안한다면 ‘들어갈 때 마음과 나올 때 마음이 한결같은 진실한 사람’이 맞는지 의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독선적으로 보일 만큼 자존심이 세다. 때문에 좀처럼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라와 국민을 위해서라도 이젠 달라져야 한다. ‘네 탓이 아니라 내 탓’을 인정할 때 비로소 문제 또한 풀리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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