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단법석’은 깨달음의 길목
그러나 소란스럽게만 비쳐져
정치권의 행태 또한 마찬가지

19대 국회 ‘사상 최악’ 평가
잘못 뽑은 유권자들도 책임
‘4·13총선’ 악순환 되풀이말길

‘야단법석’처럼 그 의미가 크게 바뀐 말도 없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한 곳에 모여 몹시 소란스럽게 구는 일’을 가리키는 야단법석은 원래 불교 용어다.

어원도 둘로 나뉜다. 바로 ‘야단법석(惹端法席)’과 ‘야단법석(野壇法席)’이다. 첫 번째 야단법석의 야단은 ‘야기요단(惹起鬧端)’의 준말이다. 야기요단은 곧 요단을 일으킨다는 뜻인데 이를 줄여 ‘야료(惹鬧)’라 한다. 흔히 생트집을 잡고 괜한 시비를 거는 것을 일컫는다.

그러나 불법(佛法)에서의 ‘야기요단’은 진리에 대한 끊임없는 의심을 가리킨다. 진리에 대한 의심은 깨달음으로 가는 첫 걸음이다. 그러므로 ‘야단법석’은 진리에 대한 의심을 묻고 대답하는 설법의 장(場)을 말한다.

두 번째 ‘야단법석(野壇法席)’은 글자 그대로 야외에 법단을 차려놓고 설법을 여는 것이다. 대중들이 너무 많아 법당 안에 다 수용할 수 없을 땐 할 수 없이 야외에 차릴 수밖에 없는데, 그럴 경우 모양이 성대하고 시끌벅적할 것임은 자명한 이치다. 따라서 소란스러운 상태를 가리키는 ‘야단법석’의 어원(語源)은 양쪽 모두에서 찾아도 무방하다 할 것이다.

이 같은 장광설(長廣舌)을 늘어놓는 것은 4·13총선을 앞둔 정치권의 행태가 마치 ‘야단법석’의 본질(本質)은 외면한 채, 시끄럽고 소란스럽기만 한 ‘야단법석’ 그 자체를 쏙 빼닮았기 때문이다.

‘입법마비’ 혹은 ‘식물국회’라 불릴 정도로 제19대 국회는 ‘사상 최악(最惡)’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경제 활성화를 위해 그토록 읍소(泣訴)하던 노동개혁 5대 법안은 물 건너간지 오래다. 중국발 악재 등으로 경제 전반에 암운(暗雲)이 드리워진 가운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북한의 핵실험(수소폭탄) 강행은 국민들의 마음마저 꽁꽁 얼어붙게 만들고 있다.

그런데도 정치권은 어떤 해법을 제시하기는커녕 자신들의 ‘밥그릇 싸움’에만 여념이 없다. 당면한 현안 하나 해결하지 못하면서 ‘미래를 위한 인재 영입’ 운운하니 지나가던 소도 웃을 일이다.

그 결과 또한 한심하기 짝이 없다. 집권당인 새누리당이 영입한 이른바 ‘젊은 인재’들만 하더라도 그렇다. 그 면면을 보면 그동안 ‘종편’에서 활약하며 새누리당 입장을 대변해 온 사람들이 대부분으로, 참신성과는 아예 거리가 먼 인물들이다.

야권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 걸핏하면 ‘새정치’를 부르짖어 온 안철수의 ‘국민의당’은 최근 호남 출신 고위직 인사 5명의 영입을 야심차게 공개했다. 하지만 이 중 3명이 ‘비리인사 배제 방침’에 맞지 않다는 논란에 휘말리면서 영입을 취소해 체면을 크게 구겼다. 더불어민주당 또한 ‘여성1호’로 영입된 김모 교수가 위안부 그림 무단사용 및 논문표절 논란으로 입당을 철회하는 등 오점을 남겼다. ‘야단법석’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현 정치권의 몰염치(沒廉恥)는 선거구 획정 문제에 이르러 극(極)에 달한다. 입법이 주 임무인 국회의원들의 법을 무시한 행태로 말미암아 ‘선거구 실종 사태’는 열흘을 넘기고 있다. 이에 따라 20대 총선 출마를 선언한 원외 예비후보들은 최악의 혼란 속에 그야말로 죽을 맛이다.

이와는 반대로 현역 의원들은 경쟁 예비후보들의 손발을 꽁꽁 묶어 놓은 상태에서 의정보고회 등 선거운동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가재는 게편’이라고 직권상정(職權上程) 장담하던 국회의장도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그야말로 ‘개판’이 따로 없다.

최근 매일경제가 대학교수 1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나타난 19대 국회 성적표는 초라하기만 하다. 국회에 대한 신뢰도는 설문대상 가운데 90%가 5점 이하(10점 만점)의 낮은 점수를 줬다. 특히 8점 이상을 준 교수는 단 한사람도 없었다. 국회에 대한 부정적 평가도 무려 82%에 달했다.

장덕진 서울대 교수는 “너무 암담하다. 여당은 의회주의를 포기했고, 야당은 철저한 무능(無能)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또 다른 교수는 “국회선진화법으로 동물적인 싸움이 사라진 대신 식물(植物)국회가 돼버렸다”며 정치권을 맹비난했다.

국회와 정당을 불신하는 이유로는 ‘정치인 자질 부족’을 최우선으로 꼽았다. 문제의 심각성이 바로 여기에 있다. 자질 부족 정치인을 선택한 것은 다름 아닌 유권자, 즉 국민이다. 선거 때마다 늘 이런 류의 반성이 뒤따랐지만 이후 달라진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제발 다가오는 ‘4·13총선(總選)’에서는 이 같은 악순환(惡循環)이 되풀이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저작권자 © 제주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