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 깬 돌풍… 민진당 압승
행정·입법부 완전히 장악
중국과의 관계 등 변화 조짐

경제난·젊은층 불만 판세 갈라
대만 선거결과는 ‘반면교사’
‘4·13總選’ 직간접 영향 끼칠듯

대만 105년 역사에서 첫 여성총통이 탄생했다. 주인공은 ‘대만판 선거의 여왕’이라 불리는 차이잉원(蔡英文·59) 민주진보당(民進黨) 대표다.

차이 대표는 지난 16일의 총통(總統·대통령) 선거에서 56.1%의 득표율로 주리룬(朱立倫) 국민당 후보((31.0%)를 압도적인 차이로 제치고 당선됐다. 대만 국립정치대 법학과 교수로 재직하다 1994년 정계에 입문한 뒤 20여년 만에 이뤄낸 쾌거였다.

총통 선거와 동시에 실시된 총선(總選)에서도 민진당은 압승을 거뒀다. 국민당의 의석이 35석으로 줄어든 대신 민진당은 예상을 뛰어넘는 돌풍으로 전체 113석 가운데 68석을 휩쓸며 안정적인 과반(過半)을 차지했다. 지난 반세기 동안 입법원(국회)을 장악해 온 국민당에게 치욕적인 참패를 안긴 셈이다.

차이잉원의 당선 일성(一聲)은 “2300만 대만인과 민주체제의 승리이며, 정체성 수호는 차기 총통으로서 최대 임무다. 중국이 대만의 민주체제를 존중하지 않으면 양안(兩岸)관계는 손상될 것이다”였다. 민진당은 1986년에 창당된 토착정당으로 타이완의 독립을 지향한다. ‘하나의 중국’을 표방하고 강조해 온 대륙의 입장에선 속내가 편치만은 않을 것이다.

민진당의 이번 선거 승리 요인과 관련 전문가들은 다양한 분석을 내놓고 있다. 그 첫 번째는 ‘대만경제의 전반적인 침체’가 주된 패인(敗因)이라는 지적이다. 국민당이 펼친 친중(親中)정책이 경제상황 악화로 말미암아 국민으로부터 ‘파산 선고’를 당했다는 것. 최근 중국의 경제성장률 둔화는 대만경제까지 곤두박질치게 만들었다. 중국에만 의존했던 이른바 국민당 정부의 ‘무능(無能)’이 엄중한 심판을 받았다는 평가다.

경제적 실패는 ‘지역구도 붕괴’로 이어졌다. 우리의 영·호남과 마찬가지로 대만도 전통적으로 ‘남녹북남(南綠北藍·정당별 색깔에 따른 강세지역)’ 현상을 보여 왔다. 즉 북부는 국민당, 남부는 민진당의 아성으로 표심 역시 둘로 나뉘어졌다.

예컨대 국민당에게는 외성인(外省人·1949년 이후의 한족 이주자)이 많이 거주하는 수도 타이베이 등이 주력 지지층이었으나 이번 선거에선 통하지 않았다. 반면에 민진당은 본성인(本省人) 거주지로 전통적 지지기반인 남부지역을 안정적으로 수성했다. ‘다른 건 참아도 배고픈 것은 참지 못하는’ 인간의 본성이 수십년간 고착화됐던 선거 구도마저 무너뜨린 것이다.

청년층의 불만 폭발과 막판 불거진 ‘쯔위 사건’도 선거에 큰 영향을 끼쳤다는 게 대다수의 시각이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不確實性)’은 젊은층을 대거 투표장으로 끌어들였다. 그 기저에 깔린 건 ‘기득권(旣得權) 세력에 대한 저항’이었다. 이런 움직임이 쯔위 사건과 맞물려 민진당의 압승을 견인했다.

저우쯔위(周子瑜)는 우리나라 인기 걸그룹 트와이스의 대만 출신 멤버다. 쯔위가 한 방송에서 청천백일기(靑天白日旗)를 흔든 것을 두고 중국에서 “대만독립 주장”이라는 비판이 일며 중국 내 모든 스케줄이 취소됐다. 다급해진 소속사 JYP엔터테인먼트가 쯔위의 “중국은 하나밖에 없다”고 말하는 모습을 담은 동영상을 유튜브 등에 올리면서 이 사건은 정치적인 문제로 비화됐다. 이는 결국 국가의 주체(主體)의식에 대한 경계심을 불러일으켰고, 중국과의 거리를 어느 정도 유지하자고 주장하는 민진당에게 표를 몰아주는 기폭제로 작용했다.

경제 실패와 지역구도 붕괴, 청년층의 불만과 예기치 못한 돌발사고 등은 비단 대만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선거에도 영향을 미칠 중요 요소들이다. 다가오는 ‘4·13 총선’의 승패 또한 이 같은 ‘대만의 교훈(敎訓)’을 여·야 각 당이 어떻게 수용하느냐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만의 새 시대를 열어갈 차이잉원은 ‘선거의 여왕 ’ 말고도 첫 여성총통이자 미혼이라는 점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빼닮았다. 그러나 다른 점도 많다. 박 대통령이 인디라 간디 전 총리 등 아시아 여성지도자들처럼 아버지의 후광(後光)을 업고 정상에 올랐다면, 차이잉원은 스스로의 힘으로 대권(大權)을 거머쥐었다.

뛰어난 유머와 소통 능력도 남다르다. 선거 과정에서 중국의 수많은 네티즌들이 차이잉원의 당선을 저지하려고 페이스북 등을 통해 사이버테러를 감행했다. 당시 그의 답변은 이랬다. “freedom(자유)! 다양한 목소리는 우리 사회를 진보시킵니다. 대륙의 새 친구 여러분, 대만의 자유와 민주 그리고 다원성을 마음껏 누리세요.”

차이잉원의 새로운 ‘대만굴기(臺灣崛起)’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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