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년 만의 기록적인 暴雪
冬장군 맹위로 사흘간 고립
북극 寒氣가 원인 ‘온난화 역설’

40~50년 前 예사로웠던 추위
시대 바뀌며 사람들도 약해져
‘그 때, 그 시절’이 그립기만…

무려 32년 만의 기록적인 폭설(暴雪)이었다. 제주도 전역에 한파주의보가 발효되는 등 동장군(冬將軍)이 그야말로 맹위를 떨쳤다. 이로 인해 ‘제주섬’이 꽁꽁 얼어붙으며 사흘이나 고립됐다.

이번 강추위는 갖가지 기록도 남겼다. 제주도심에 10㎝ 이상의 눈이 쌓인 것은 지난 1984년 1월(13.9㎝) 이후 32년 만의 일이다. 한파주의보 역시 7년 만에 발효됐다.

‘최강 한파(寒波)’로 제주의 일 최저기온은 영하 5.8도까지 떨어졌다. 영하 6도(1977년 2월16일)와 영하 5.9도로 떨어졌던 같은 해 2월15일에 이어 40년 만의 가장 낮은 기온이다. 특히 고산이 영하 6.1도, 남국(南國)으로 불리는 서귀포마저 영하 6.4도까지 떨어지는 등 기상관측 이래 가장 낮은 기온을 기록하기도 했다.

폭설과 강풍으로 한라산 입산(入山)이 전면 통제됐으며, 바닷길은 물론 하늘길도 다 막혔다. 이 같은 교통마비로 관광객 등 모두 9만명에 달하는 제주체류객의 발이 묶였다. ‘제주공항 운영 재개로 25일 오후 2시47분 제주발 김포행 비행기(이스타항공)가 첫 이륙(離陸)했다’는 뉴스가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국토교통부는 “9만여명을 실어나르기 위해선 대략 540여대의 비행기가 필요하다”며 “하루 제주에서 출발 가능한 항공기가 250대 수준임을 감안하면 체류객들이 모두 빠져나오는 데 2~3일 가량이 소요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를 위해 국토부는 항공사 등과 협의해 항공기 심야 운항도 적극 검토 중이다.

이와 함께 도로가 꽁꽁 얼어붙으며 전면 통제 및 부분 통제가 이뤄지는 등 교통불편이 이어졌다. 또 각종 하우스가 무너지고 수도계량기 동파(凍破) 등 크고 작은 사고도 잇따랐다. 제주의 지난 3일은 ‘혼란과 악몽’ 그 자체였다.

이달 초만 하더라도 기온이 평년보다 따뜻해 ‘겨울이 실종됐다’는 말까지 나돌았다. 하지만 23일부터 갑작스레 몰아닥친 맹추위가 모든 걸 삼켜버렸다. 그렇다면 ‘최강 한파’의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전문가들은 이번 한파의 주범을 ‘북극(北極)의 한기(寒氣)’ 탓으로 보고 있다. 이달 초까지 이어진 엘니뇨(적도 부근의 해수면 온도 상승)의 기세가 약화되고 북극 주변의 제트기류마저 약해지면서 북극의 한기가 한반도 상층으로 내려왔다는 것. 평소 제트기류는 북극의 한기를 막아두는 역할을 하는데, 최근 온난화(溫暖化)로 인해 빙하가 많이 녹으며 제트기류가 헐거워져 북극의 한기가 한반도로 진출하며 맹추위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이른바 ‘온난화의 역설(逆說)’이다.

이번 맹추위와 관련 언론은 ‘최강 한파’라 부르고 있다. 사람들도 폭설을 동반한 갑작스런 한파에 허둥지둥 갈피를 잡지 못했다. 그러나 가만히 돌이켜보면 이 정도의 추위는 40~50년 전만 하더라도 예사로 발생했던 일이었다.

일요일인 24일, 필자의 또래들(50~60대)이 모인 술자리에서도 최근의 날씨는 단연 화제가 됐다. 허나 나온 이야기들은 시중의 반응과 사뭇 달랐다. 이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사람들이 너무 ‘호들갑’을 떨 정도로 약해졌다는 것이다.

TV는커녕 라디오가 있는 집도 드물고 별다른 놀이가 없던 어린 시절, 눈이 쌓인 학교 운동장과 빙판이 형성된 신작로(新作路)는 우리들의 즐거운 놀이터였다. 지금과 같은 기능 좋은 방한복도 없었지만 그렇게 추위를 느꼈던 것 같지는 않다. 조금만 추워도 움츠러들어 집에만 박히는 아이들이 안타깝다는 반응이 주류였다.

어느덧 분위기는 과거로 흘러 갖가지 이야기들이 쏟아졌다. 어떤 이는 이맘 쯤이면 동네 사람들이 힘을 합쳐 초가지붕을 새 옷으로 단장했었다며 마을 모두가 하나 됐던 소중한 추억을 회상했다. 또 다른 이는 국수 한 그릇을 얻어먹기 위해 밤새 ‘새벽송’을 돌던 일부터, 크리스마스 실(seal)을 붙여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보냈던 ‘손엽서’까지 끄집어냈다. 생활은 힘겨웠으나 소박하고 정겨웠던 그 시절, 그 친구들이 그립다는 것. 어쩌면 모두 어려웠기에 서로가 행복했던, 지금의 ‘양극화(兩極化) 현상’과는 아주 다른 기억과 모습들이었다.

‘문명의 이기(利器)’가 발달할수록 사람들이 점차 설 자리를 잃고 있는 게 오늘의 현실이다. 그것은 사람들 외형적 삶만의 문제가 아니라 정신적인 면에서도 마찬가지다.

기록적인 폭설과 한파를 계기로 새록새록 돋아나는 옛 추억들…. 비록 몸은 추위에 노출되고 간혹 시달리기도 했으나 마음만은 따뜻했던 그 때와 그 겨울이 무척이나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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