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기거래 규제’ 강조하며
美 오바마, 연설중 또 눈물
국민들 “최고의 감동적 순간”

“남을 위해 흘리는 눈물은 寶石”
정치는 국민 아픔 달래주는 것
우리도 ‘대통령의 눈물’이 그립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또 눈물을 보였다. 올해 초 ‘총기거래 규제를 담은 행정명령’을 발표하는 자리에서다. 오바마는 최근 수년간 발생한 총기(銃器)폭력 사건들을 언급하며 “무고한 시민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자유에 약간의 제한을 두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강조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2012년 샌디 훅 초등학교에서 어린 학생들이 총기 난사(亂射)로 숨진 사건을 떠올리며 10여초간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이윽고 “당시 숨진 초등 1학년생 20명을 생각하면 미칠 지경”이라고 말하는 대목에선 북받치는 감정을 주체 못해 왈칵 눈물을 쏟아냈다.

연설이 끝난 뒤 트위터엔 “대통령이 눈물을 훔쳤고 나도 그랬으며, 지금까지 본 최고의 감동적인 순간이었다”는 등의 글들이 올라왔다. BBC 방송은 “감정적인(emotional) 대통령은 총기 규제에 대해 모든 수사학적(修辭學的) 기술을 다 썼다”며 한 마디 말보다 눈물로써 총기규제 행정명령을 발동해야 하는 당위성을 말했다고 찬사를 보냈다.

반면에 보수 진영은 ‘가식의 극치’ 혹은 ‘악어의 눈물’이라 맹비난하고 나섰다. 우리로선 이 같은 미국 사회의 상반된 반응이 낯설고 헷갈리기 일쑤다.

하지만 미국 수정헌법 2조는 총기소유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이는 서부 개척시대부터 내려오는 독특한 전통(傳統)으로, 개개인이 ‘타락한 권력에 맞서 싸울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로 여겨진다는 점에서 다소 수긍이 가는 점도 있다.

정치인과 눈물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상관관계를 지닌다. 문제는 이를 받아들이는 언론의 해석이다. 똑같은 눈물이라도 호감을 보이는 정치인에겐 호의적이지만, 그렇지 않은 정치인에 대해선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기도 한다.

이런 점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 함께 ‘눈물’을 정치에 잘 활용한 인물로 꼽힌다. 오바마는 그동안 기자회견을 하면서 수차례 눈물을 보였는데 그때마다 언론으로부터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빌 클린턴 또한 르윈스키와의 성추문 등 정치적 위기에 처할 때마다 눈물로 대응했다. 공화당 등은 ‘가짜눈물(fake tears)’이라고 공격했지만 잘 생긴 대통령의 눈물은 국민들의 마음을 흔들어 되돌리는 무기로 작용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이 범주에 속한다. 지난 2002년 대선(大選)에서 노무현 후보는 TV광고를 통해 존 레넌의 ‘이매진’을 배경음악으로 노동자들과 소주잔을 기울였다. 이어 붉은 악마의 월드컵 응원과 고달픈 삶의 현장이 오버랩되고, 영상이 흑백으로 바뀐 뒤 클로즈업된 노 후보의 얼굴에선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대통령에 당선되는데 상당부분 기여한 수작(秀作)의 광고였다.

이에 반해 잘못 흘린 눈물로 점수를 깎인 정치인도 있다. 강인한 ‘마초’ 이미지를 구축하며 ‘현대판 차르’로 불리는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2012년 3월 선거에서 승리한 뒤 TV로 생중계된 연설 도중 갑자기 눈물을 보였으나 기대한 효과를 얻지 못했다. 오히려 그의 눈물은 반대 세력의 조롱거리가 됐다. 당시 러시아 푸시킨 광장에 뿌려진 전단지에는 “모스크바는 눈물을 믿지 않는다”고 적혀 있었다.

아랍 속담에 ‘햇빛만 쏟아지는 곳은 사막이 된다’는 말이 있다. 때론 비도 와야 한다. 먹구름이 하늘을 뒤덮고 비가 쏟아질 때 뭇 생명들이 되살아나 움틀거린다. 인생도 마찬가지로, 눈물이 없는 인생은 사막과도 같다. 가수 나훈아는 ‘사랑은 눈물의 씨앗’이라고 노래했지만, ‘눈물은 사랑의 씨앗’이어야 한다.

‘어린 왕자’를 쓴 생 텍쥐페리는 “슬픔을 느끼는 것이야말로 살아있는 증거이고, 남을 위해 흘리는 눈물은 모든 사람들의 가슴 속에 숨어 있는 보석”이라고 했다.

울고 싶을 땐 울어야 한다. 우는 사람을 그치게 하는 것은 달래는 것이 아니라 같이 울어주는 것이다. 그것은 정치인도,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흔히 정치를 ‘국민들의 상처와 아픔을 치유하고 눈물을 닦아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울고 싶은 사람들이, 울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설혹 ‘가식(假飾)의 눈물’이어도 좋다. 우리는 지금, 곳곳에 도진 상처와 아픔을 함께 나누며 울어주는 대통령과 정치인이 그립다.

‘4·13총선’을 앞두고 제주지역의 모 후보는 ‘눈물’ 대신 ‘3선은 국회의 꽃, 4선은 국회의 열매’란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그러나 불교 ‘화엄경’의 법문은 이렇게 깨우치고 있다. “나무는 꽃을 버려야 열매를 맺고, 강물은 강을 버려야 비로소 바다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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