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부터 조릿대 확산 우려
환경부, 공문 통해 警告 메시지
“한라산 국립공원 제외될 수도”

행정의 늑장대응이 禍 키워
‘생태계 보고’ 파괴 가속화
TF 구성 등 道 적극 나서야

“한라산의 생태계가 기후 온난화와 왕성한 번식력을 가진 제주 조릿대로 인해 본래의 모습을 잃어가고 있다. 이러다가 식생의 보고(寶庫)로서의 명성도, 심지어 천연보호구역이란 말을 듣지 못하게 되는 날이 오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얼핏 최근의 상황을 다룬 것으로 보이지만 결코 아니다. 지난 2008년 7월 20일자 제주매일에 실린 ‘한라산 조릿대 지켜만 볼 건가’ 제하(題下)의 사설 내용 중 일부다. 사설은 계속 이어진다.

“더욱 심각한 일은 이미 한라산 정상 부근까지 조릿대가 잠식했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봄철 한라산을 화려하게 장식하던 철쭉도 예전의 모습이 아니다. 더 이상 조릿대의 잠식을 지켜보고 있어선 안 될 이유인 것이다.”

그로부터 8년이란 세월이 흐른 올해 1월, 정부의 ‘경고장(警告狀)’이 제주도에 날아들었다. 환경부가 한라산국립공원관리사무소에 보낸 공식문건이 바로 그것이다.

환경부는 공문(公文)을 통해 “장차 한라산이 ‘조릿대공원’이 되어 국립공원에서 제외되는 상황이 올 수 있으므로 제주도가 아주 심각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경고했다. 이어 “환경부 및 국립공원관리공단과 함께 조릿대 관리문제 등 (한라산) 현안에 대한 적극적인 대처가 요구된다”고 밝혔다. 한라산 국립공원을 ‘조릿대공원’이라고 비하(卑下)해 표현할 만큼 아주 강한 정부의 메시지였다.

환경부의 이번 공문은 지난해 12월 열린 ‘제114차 국립공원위원회’ 회의 내용을 축약(縮約)한 것이다. 이 회의에선 한라산을 뒤덮은 조릿대의 확산으로 인해 국립공원 뿐만 아니라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에서도 지정 해제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담죽엽(淡竹葉) 혹은 탐라산죽(耽羅山竹)으로도 불리는 ‘제주조릿대’는 잎 가장자리에 흰색 무늬가 있으며 최고 150㎝까지 자란다. 그러나 강한 번식력으로 다른 고산식물을 고사(枯死)시켜 한라산 생태계 파괴의 주범으로 꼽힌다.

한라산연구소 보고서에 따르면 제주조릿대는 한라산 해발 500m에서 정상부인 백록담 화구벽 밑 1900m까지 잠식했다. 계곡과 암석지, 목초지와 습지 등을 제외한 한라산 국립공원 전체 면적(153.33㎢)의 90%를 뒤덮을 정도로 번식력이 강하며, 그 세력을 빠르게 넓혀가고 있다.

이로 인해 설앵초와 한라구절초 등 고산성 초본식물과 10~20㎝ 내외의 시로미나 눈향나무, 높이 1m가 넘는 털진달래를 비롯해 꽝꽝나무 및 구상나무 등이 고사되고 있다. 한라산 생태계 관리 및 종(種) 다양성 유지와 보존에 초비상(超非常)이 걸린 셈이다.

제주조릿대는 지난주 열린 도의회 임시회에서도 쟁점이 됐다. 이선화 의원(새누리당)은 “한라산 조릿대 문제는 비단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며 “지난 1월 환경부의 공문은 도정이 심각하게 고민하라는 공적인 메시지”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제주도의 태도는 ‘안이함’ 그 자체였다. 김창조 한라산국립공원사무소장은 “환경부 공문은 한라산이 식물의 보고로서 다양한 식생이 있는 곳이기에 조릿대 밭이 되면 되겠느냐는 ‘당부성 메시지’로 우려할 수준은 아니”라고 답변해 붙는 불에 기름을 끼얹은 꼴이 됐다.

이에 대해 이 의원은 “소나무 재선충병도 행정의 늑장대응이 화(禍)를 키웠다”며 “조릿대 문제로 정부가 본질적인 고민을 하고 있는데, 이를 ‘당부’라고 이해하면 인식에 큰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고 생태계 관리에 대한 도정(道政)의 마인드 부족을 강하게 질타했다.

한라산의 조릿대 확산은 실로 단순한 사안이 아니다. 최근의 구상나무 쇠퇴 등도 조릿대가 한 원인인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조릿대의 급속 확산은 지구온난화로 기온이 높아진데다 이를 먹어치우던 소와 말의 방목이 지난 1980년대 중반부터 금지된 탓으로 보고 있다.

때문에 조릿대 억제책으로 말과 소의 방목 부활이나 벌채, 조릿대를 이용한 각종 제품개발 등 다양한 방안들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실행과 관련해선 확실한 연구가 먼저라는 주장과 도민 공감대가 우선이라는 의견 등이 분분한 상태다.

문제는 해결책을 놓고 갑론을박(甲論乙駁)을 벌이는 와중에도 조릿대는 날로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처럼 시간을 계속 지체하다간 자칫 ‘조릿대공원’ 우려가 현실로 다가올 수도 있다.

세계적 자랑거리인 한라산 생태계를 이대로 방치해선 안 된다. 자연의 변화도 인간의 노력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중앙에만 의지할 것이 아니라 그 흔한 TF라도 구성하는 등 제주자치도가 주도적으로 나서길 주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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