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사회도 ‘갑질 행각’ 만연
인사혁신처, ‘공무원 징계’ 개정
소극행정 적발시 파면 등 退出

‘솜방망이 처벌’이 악순환 불러
국회의원 갑질 등 ‘巨惡’ 도외시
제대로운 효과 거둘지는 미지수

지난 2014년 12월, 뉴욕발 한국행 항공기가 활주로로 이동하다가 후진한 사건이 있었다. 이른바 있는 자들의 대표적인 ‘갑(甲)질 행각’이었던 조현아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 회항’이다. 이 사건은 온 국민적 공분과 함께 국가적으로도 큰 망신을 당했다.

하지만 이는 ‘빙산(氷山)의 일각’이었을 뿐, 아직도 우리사회 전반엔 ‘갑질’이 만연해 있다. 그것은 국민의 공복(公僕)임을 자처하는 공직사회 역시 예외는 아니다.

인사혁신처가 적극적으로 일하는 공직문화를 조성하기 위해 ‘공무원 징계령 시행규칙’ 개정안을 7일부터 입법예고했다.

개정안은 부작위(不作爲) 또는 직무태만 등의 소극행정을 국가공무원법상 ‘성실의 의무 위반’으로 명시하고 징계양정 기준을 마련했다. 여기서 ‘소극행정’이란 공무원이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거나, 할 수 있는 일을 하지 않아 국민 권익을 침해하고 불편을 초래하는 등의 업무형태를 말한다.

인사처는 소극행정과 관련 고의성이 있는 경우 파면하는 등 공직에서 퇴출(退出)시키기로 했다. 또 경미한 수준의 소극행정을 해도 인사상 불이익을 주게 된다.

반면에 적극행정을 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과실에 대해서는 징계 감경은 물론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해 능동적으로 일하는 문화가 뿌리내리도록 할 방침이다.

이 같은 정부의 강수(强手)는 제반 조치에도 불구 공무원의 ‘갑질 논란’이 끊이질 않고, 지나치게 낮은 처벌로 인해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는데 기인한다.

행정자치부가 지난달 공개한 ‘2015년 4분기 공직감찰결과’는 이를 입증하고도 남는다. 이번에 적발된 갑질 사례는 모두 68건. 모든 공무원들의 위법 행위를 적발해 내기에는 한계가 있었다는 관계자의 말을 감안하면 훨씬 많은 공무원들이 연루되어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적발 사례를 보면 지자체가 법정 기한을 넘겨 인·허가를 지연 처리하거나 행정소송 패소(敗訴) 후에도 승인 처분을 해주지 않고 장기간 방치한 경우가 있었다. 또 법령에 근거 없는 사유로 정당한 인·허가를 반려하거나 부당한 조건이나 서류 제출을 요구하는 등 규제를 남용한 사례도 부지기수였다.

이밖에 국내외 여행경비 등을 업체에 전가했다 적발됐는가 하면, 심지어 법령을 위반한 과도한 자격제한으로 기업체의 입찰 참여 기회마저 박탈하는 갑질도 상당수였다.

업계 관계자들이 “위법·불법 행위를 눈감아 주도록 ‘뇌물(賂物)’을 주는 것이 아니라, 법령이 인정하는 한도 내에서 일 처리를 조속히 해달라는 ‘급행료(急行料)’가 대부분”이라는 하소연이 실감날 정도다. ‘뇌물사건’만 터지면 업계가 부도덕한 집단으로 지탄받지만 시한에 쫓기는 을(乙)의 입장에서 공무원의 갑질이 이런 잘못을 조장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공직사회의 갑질이 계속되는 것은 비위 공무원에 대한 처벌 수위가 너무 낮기 때문이다. 행자부가 4분기 공직감찰로 106명의 공무원에 대해 징계요구를 했으나 정작 파면·해임·정직 등의 중징계는 2명 뿐이었다. 나머지 104명은 경징계 및 주의 조치에 불과했다. ‘제식구 감싸기식 솜방망이 처벌’이 공무원의 갑질을 악순환(惡循環)시키는 주범인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인사혁신처의 조치가 제대로운 효과를 거둘지는 의문이다. 벌써부터 공직사회 일각에선 ‘적극 행정과 소극 행정의 정확한 기준이 뭐냐’는 물음에서부터 자칫 ‘코에 걸면 코걸이요,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되는 것 아니냐’는 볼멘소리가 쏟아져 나온다. 더욱이 국회의원이나 고위 공직자의 갑질 등 ‘거악(巨惡)’은 놔둔 채, 하급직 공무원들만 들볶으려 한다는 반발이 나오는 등 앞으로 저항이 만만치 않을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모 시청과 지난 1년간 사업 관계로 힘겨운 싸움을 벌여왔다는 한 민원인은 최근 인터넷에 ‘갑질하는 공무원의 힘 무섭습니다’란 글을 올렸다.

“국가권익위원회 등에 민원을 넣었더니 담당 공무원과 잘해보라면서 관할시청으로 서류가 돌아오더군요. 국회의원 나리들은 선거 등 행정관청과 껄끄러운 관계 때문인지 불편해하고, 또 시의원은 ‘억울하신 건 알지만 힘이 없습니다’라는 답변만 보내왔습니다. <중략> 이게 정말 내 나라 대한민국인가 싶군요. 힘 없는 시민은, 빽 없는 국민은…. 그래도 대한민국에 정의가 있을 거라 생각한 나는 외계인(外界人)인가 봅니다.”

누군가 이런 말을 했던 기억이 난다. “현재의 사회적·경제적 불평등을 당연하게 여긴다면, 당신도 언젠가는 ‘갑질의 희생자’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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