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이 아니라 이제 또 다른 시작
영화 통해 ‘平和 새싹’ 다시 틔워
서귀포성당서 열린 개막식 성황

‘강정을, 평화를 잊지말자’ 염원
日 오키나와와 섬들의 평화연대
폐막작 제목 ‘우리 승리하리라’

“끝이 아니라 이제 새로운 시작이다.” 해군기지로 몸살을 앓고 있는 제주의 강정마을에서 평화의 새 싹을 다시 틔우려는 노력이 펼쳐지고 있다. ‘모다들엉(모두 모여) 평화!’를 주제로 한 제1회 강정국제평화영화제가 바로 그것이다.

양윤모 집행위원장의 말처럼 강정영화제는 시민들의 생각으로 십시일반(十匙一飯) 만들어진, ‘평화’를 타이틀로 한 대한민국 최초의 국제영화제다.

지난 23일 서귀포성당에서 열린 개막식엔 1000여명이 넘는 관객이 몰려 대성황을 이뤘다. 성당 1,2층을 가득 채우고도 사람이 넘칠 정도로 아주 큰 반향(反響)을 불러 일으켰다. 어쩌면 서귀포시 예술의전당의 ‘대관 불허’ 조치가 일정 부분 일조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홍성우 강정영화제 공동조직위원장은 ‘강정을, 평화를 잊지 말자’는 염원을 담아 개막(開幕)을 알렸다. 고권일 공동위원장은 “평화를 향한 우리의 마음은 마치 바다로 흘러가는 강물과 같이 도도하게 흘러가고 있다”며 “바람에 의해 물결이 옆으로 빠지는 것처럼 보여도 결국 바다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고 강조했다.

천주교 제주교구장인 강우일 주교는 “한반도는 세계에서 군사적 긴장이 가장 고조된 지역”이라 전제하고, “평화연대(平和連帶)를 구축하는 일만이 고조되는 세계 전쟁의 위험을 막아내는 방법”이라고 설파했다. 이어 “강정영화제가 세계 평화연대를 형성하는 첫 징검다리가 되기를 희망한다. 이 영화제를 통해 더 많은 대중이 평화를 자신의 문제로 인식하고, 모든 종류의 폭력에 무관심·방관으로 대처하지 않기를 소망한다”고 밝혔다.

강정영화제의 개막작은 김동빈 감독의 ‘업사이드 다운’이었다. 이 영화는 세월호 유가족 아버지 2명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국사회의 구조적 모순(矛盾)을 되짚어보는 내용의 다큐멘터리다.

이번 영화제에선 10개국 34편의 영화가 상영된다. 또 3회에 걸친 평화포럼과 거리공연 등 다양한 행사가 펼쳐진다.

24일 열린 첫 번째 평화포럼의 주제는 ‘강정-오키나와, 섬들의 연대’. 이날 포럼에서는 한국과 일본 두 섬의 연대가 다른 동아시아 지역까지 아우르는 ‘아시아 평화연대’의 중심이 될 수 있다는 희망 섞인 기대가 나왔다.

해군기지 건설에 맞서 싸우고 있는 서귀포시 강정과 거대한 미군기지에 투쟁을 포기하지 않는 일본 오키나와. 나라와 백성은 다르지만 공권력(公權力) 앞에서 주민의 삶이 위협받는 상황은 꼭 닮았다. 특히 제반 압력에 굴하지 않고 평화운동으로 승화시키려는 노력은 서로가 공감하기에 충분했다.

포럼에 참석한 고권일 강정마을회 부회장은 “비록 땅도 부서지고 공동체도 깨졌지만 끊임없이 평화에 대한 열망을 마음속에서 지우지 않는 한, 다시 하나의 공동체로 합쳐지고 구럼비 바위를 찾는 날이 올 것이다”고 밝혔다.

야마시로 히로지 오키나와 평화센터 의장도 “우리가 목소리를 내는 이유는 단지 평화롭고 안전하게 살고 싶기 때문이다. 몇 백년 동안의 차별과 억압을 거쳐 전쟁까지 겪은 뒤 다시 고통받는 오키나와의 현재를 보면 강정(江汀)과 동일해 보인다”며 앞으로 평화연대 활동을 같이 해 나갈 것을 다짐했다.

영화제를 계기로 다시 한번 ‘강정’을 되돌아보자. 지난 2007년 해군기지 건설이 확정된 이후 강정은 평화를 지향하는 이들의 오랜 투쟁터였다. 특히 강정 주민들은 마을의 상징인 ‘구럼비 바위’를 지키려고 목숨을 걸고 싸웠다. 하지만 공권력의 횡포는 극에 달했다. 구럼비만은 안 된다는 각계의 요구에도 불구 해군은 화약을 사용해 끝내 구럼비를 폭파시켜 버렸다. 이때 파괴된 것은 바위덩어리 구럼비 뿐만이 아니었다. 수 백년 마을의 전통과 삶의 흔적, 사람들의 영혼까지도 무참하게 파괴되고 무너져 내린 것이다.

10년에 걸친 치열한 싸움을 뒤로한 채, 결국 제주해군기지는 건설되고 완공되었다. 그렇다고 ‘강정의 정신’마저 죽은 것은 아니었다. 강정은 이제 평화를 염원하고 지지하는 사람들의 ‘상징적 고향’으로 되살아났고, 영화제는 ‘평화의 싹’을 다시 꽃 피우려는 새로운 도전의 출발점이다.

지금 강정은 묻고 있고, 역사는 지켜보고 있다. ‘강정의 평화’를 짓밟은 것은 과연 무엇인가. 순박했던 사람들을 ‘생존의 투쟁가’이자 ‘평화의 수호자’로 만든 것은 또한 누구인가.

제1회 강정국제평화영화제는 나흘간의 일정을 마무리하고 26일 오후 폐막(閉幕)된다. 그리고 폐막작으로 선정된 영화는 미카미 치에 감독의 ‘우리 승리하리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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