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렴도 전국 하위권 불구
非理 공무원 감싸기 일관
거액 도박 등 모두 감경조치

民選 이후 票 위주 인물 발탁
공직사회 기강 일거에 무너져
‘공유지 매입’ 논란도 연장선상

지난 2013년 5월 제주도청에선 ‘청렴성공 프로젝트 정책토론회’가 열렸다. 국민권익위원회가 주관한 이날 토론회는 제주도의 청렴도(淸廉度) 하락 원인을 분석하고, 이에 대한 정책 대안을 담은 ‘부패 역량 진단 보고서’도 발표됐다.

그 결과 제주자치도의 청렴도를 전국 꼴찌로 추락하게 만든 장본인으로 실·국장 등 간부급 공무원이 지목됐다. 특히 잘못이 적발돼도 전체 기관의 구조적인 문제가 아니라 개인적인 문제로 치부하고, 자기반성보다는 외부 탓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많았다.

이에 제주도는 국민권익위의 지적과 제안 등을 겸허하게 수렴 정책에 반영해 공직사회의 청렴도를 향상시키는데 총력을 기울여 나가겠다고 다짐했었다. 그러나 말뿐이었다.

그토록 굳은 다짐을 했건만 2~3년이 흐른 오늘에 이르러서도 이 같은 양상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제식구 감싸기’ 등의 해묵은 온정(溫情)주의가 기승을 부리면서 공직사회를 더욱 혼탁하게 만들고 있다.

최근 제주도감사위원회가 밝힌 사례에서도 이는 분명하게 드러난다. 도감사위는 지난해 공무원 범죄 및 비위 등의 조사 후 총 83건에 대해 징계처분 요구를 했다. 그런데 이 중 18명이 감경(減輕)처분을 받았다. 특히 8명(도 2명·제주시 6명)은 감경 대상이 아님에도 감경됐다.

상습도박죄로 벌금 1000만원을 선고받은 제주도 소속 공무원 A씨의 경우를 보자. A씨는 2012년 10월부터 2014년 3월까지 집과 사무실에서 휴대전화를 이용 600여회에 걸쳐 2억5000만원 상당의 스포츠토토 등 도박을 하다 적발됐다.

조사에 나선 도감사위는 공무원 품위유지 의무 위반으로 중징계(重懲戒)를 요구했다. 하지만 도인사위는 감봉 1월의 경징계를 내렸다. 이를 위해 내세운 감경사유가 실로 가당찮고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다. “도박자금을 대출받아 사용하는 등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은 점을 감안했다”는 것이다.

제주시 소속 B씨 등은 수십 회에서 많게는 100회가 넘게 허위로 출·퇴근 시간을 입력해 초과근무수당을 수령한 혐의로 중징계가 요구됐다. 하지만 이 역시 감봉 1월이란 ‘솜방망이 처벌’에 그쳤다. “잘못을 반성하고 있고 그동안 근면성실하게 근무해왔다”는 게 감경사유다.

아니, 피 같은 국민 세금(血稅)을 더 빼먹으려고 근무시간을 조작하는 것이 ‘근면성실’인가. 그야말로 지나가던 소도 웃을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동안 제주자치도는 청렴도 하위권 탈출을 위해 틈이 날 때마다 ‘신상필벌(信賞必罰)의 원칙’을 강조해왔다. 원희룡 도정이 들어선 이후에도 이런 기조는 계속 유지됐으나 정작 결과는 척결과 거리가 먼 비위 공무원 감싸기로 귀착됐다.

자연환경과 공직사회 모두 ‘청정(淸淨)’을 자랑했던 제주도의 급전직하(急轉直下)는 과연 어디에서 연유된 것일까. 사람들은 멀리 ‘민선시대 출범’에서 그 원인을 찾고 있다.

민선(民選)은 ‘풀뿌리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수식에 걸맞게 여러 가지 순기능을 갖춘 제도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론 각종 부작용도 양산했다. ‘표(票)의 등가성(等價性)’을 중시하는 민선의 특성상 선출직은 실력 있는 공무원보다 표를 끌어올 수 있는 사람들을 더 선호했다. 다른 지역과 달리 혈연과 지연, 학연 등의 의존도가 강한 제주이기에 더욱 그랬다.

공무원의 ‘능력’은 그 무엇보다 ‘표’가 좌우했다. 이에 따라 선거 때면 끼리끼리 패거리가 형성되기 시작했고, 거사(선거)에 성공할 경우 논공행상(論功行賞)이 뒤따랐다. 이런 와중에 ‘공직기강’은 속절없이 무너졌다. 이른바 실적·실세(實勢) 위주로 공직사회가 재편된 것이다.

민선 이후 선거 공헌도나 각종 연고로 인한 공사 수주 사례가 비일비재했다. 말로는 성과주의를 거론하면서도 실제는 ‘개인의 충성도’가 인사를 좌우했다는 것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다.

지난 4·13 총선 과정에서도 공무원의 공유지 매입이 큰 논란으로 불거졌다. 또 공유재산의 95% 이상이 수의계약으로 임대가 이뤄진 것으로 밝혀졌다. 이를 두고 ‘민선 폐해’의 연장선상이 아니라고 부정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조선 후기 실학자 정약용은 명저 ‘목민심서(牧民心書)’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청렴은 목민관의 기본 임무로, 모든 선의 원천이며 모든 덕의 근본이다. 청렴하지 않고 목민할 수 있는 자는 없다”

200년 전 다산(茶山)의 외침이, 정녕 오늘을 사는 공직자들에겐 들리지 않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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