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년 꼴찌 ‘레스터시티’ 축구팀
1/5000 확률 깨고 EPL 우승
세계 언론 “기적이자 동화” 찬사

자조 섞인 ‘흙·금수저’ 논란
칭기스칸 “나를 극복 꿈을 이뤘다”
미래는 도전하는 자의 몫

어떤 이는 ‘기적’이라 했고, 어떤 이는 ‘한편의 동화’라고 했다. 창단 132년 만에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첫 우승의 기적을 일궈낸 ‘레스터 시티’를 두고 하는 말이다.

지난주 전 세계는 인구 30만의 작은 도시 레스터(영국)를 연고로 한 축구팀의 기적(奇蹟) 같은 성공 스토리에 열광했다. 이들이 집중조명을 받은 것은 밑바닥 인생을 떨치고 일어난, ‘언더독(이른바 한국의 흙수저)’의 반란이었기 때문이다.

언더독(underdog)은 싸움에서 진 개를 뜻한다. 패배자·약자(弱者)를 일컫는 대명사다. 이는 레스터 시티의 ‘신상명세’를 보면 여실히 드러난다.

1884년 창단한 레스터는 지난 시즌 하위권을 맴돌며 2부 강등을 걱정하는 처지였다. 주전 11명의 이적료를 다 합쳐도 420억원 가량. 손흥민의 토트넘 이적료 400억원과 비슷하다. EPL 개막 전 도박사들이 점친 우승 확률은 5000분의 1로 고작 0.02%에 불과했다.

우승의 주역인 제이미 바디는 주급 30파운드를 받는 공장 짐꾼, 리야드 마레즈는 빈민가 출신으로 프랑스 2부 리그에서 뛰었던 경력이 전부였다. 하지만 이탈리아 출신 클라우디오 라니에리(65) 감독이 부임한 후 전혀 다른 팀이 됐다.

라니에리 역시 30년 지도자 생활에서 1부 리그 우승은 없었기에 선수들과 동병상련(同病相憐)이었다. 때문에 이들의 심정을 잘 헤아려 조련시켰고, 마침내 레스터는 축구판 ‘공포의 외인구단’으로 변신했다.

기적 같고 동화 같은 이번 우승의 이면엔 역경을 이겨내는 도전정신과 자신감이 있었다. 그것은 명장(名將)으로 거듭난 라니에리가 ‘흙수저’들에게 불어넣은 ‘혼(魂)’이기도 했다.

레스터의 EPL 우승이 확정된 후 영국 BBC는 “프리미어리그 역사에 터닝 포인트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데일리메일은 “스포츠의 가장 위대한 동화(童話)가 완성됐다”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이번 레스터의 우승을 보며 불현듯 1970년대 초반 필자의 중학 시절이 떠올랐다. 시골에 위치한 모교(신창중)의 교기(校技)는 배구였다.

당시만 하더라도 올림픽 금메달은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했던 시절(양정모가 대한민국 사상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한 것은 1976년 몬트리올)이었다. 그러기에 시골 학교가 구기 종목으로 전도 대회에서 우승하는 것은, 마치 제주도가 축구나 배구 등으로 전국을 제패하는 쾌거(快擧)나 다름 없었다.

그런데 이변, 아니 ‘기적’이 일어났다. 3학년 때 배구단이 전도체육대회와 종별선수권대회에서 연거푸 우승을 거머쥔 것이다. 중학배구가 최고 전성기라 재학생뿐 아니라 학부모들도 흥분하고 환호했음은 물론이다. 고향 어귀에서 마을에 하나 밖에 없었던 트럭에 선수들을 태우고 학교까지 동네 사람들과 퍼레이드를 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이를 기려 학교와 동창회에서는 본관 앞에 기념비를 하나 세웠다. 그리고 그 비에 새겨진 문구는 바로 ‘하면 된다’였다. 지금 생각하면 아주 우습고 낯 뜨거운 일이지만 그 때는 그런 시절이었다.

사회 양극화에 이어 최근 ‘흙수저·금수저’ 논란으로 대한민국이 몹시 우울하다. 특히 ‘흙수저’란 말 속엔 어느 한 곳 의지할 데 없는 젊은이들의 자조(自嘲)가 짙게 배어 있다. 정부와 정치권이 이들에게 희망을 줘야 하지만 이상과 현실은 거리가 멀다.

그렇다고 좌절하거나 자포자기해선 결코 안 된다. 시대가 달라졌다고는 하나 미래는 도전(挑戰)하는 자의 몫이다. 지금은 고인이 된 ‘젊은이의 우상’ 스티브잡스는 스탠포드대학교 졸업식에서 이런 축사를 한 적이 있다. “우리는 항상 배고파야 합니다. 결핍은 우리를 더욱 강하게 만듭니다. 계속 갈망하고 언제나 우직하게 전진하십시오”

외신은 영국의 수도인 런던시장 선거에서 노동당의 사디크 칸 후보가 당선됐다고 전한다. 칸 당선자는 파키스탄 출신 이민자 집안에서 아주 어렵게 자란 전형적인 ‘무슬림 흙수저’다. 그러나 온갖 고난을 이겨내고 자수성가(自手成家)했다. 이번 선거 역시 ‘대표적 금수저’인 잭 골드스미스 후보를 꺾고 당선됐다. 어떤 위기에도 굴하지 않은 불굴의 의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집안이 나쁘다고 탓하지 말라. 나는 아홉 살 때 아버지를 잃고 마을에서 쫓겨났다. 포기하지 말라. 적(敵)은 밖에 있는 게 아니라 내 안에 있었다. 나를 극복하는 순간 나는 꿈을 이뤘다.”

몽골 초원의 영웅(英雄) 칭기스칸이 남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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