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만 돌파한 영화 ‘哭聲’
개봉 앞서 郡守가 신문 기고
발상 전환 ‘우려’를 ‘기회’로

이성적 판단·감성적 호소 ‘화제’
유려한 필치 속 고향사랑 듬뿍
우리에게도 그런 지도자가 …

나홍진 감독의 세 번째 작품인 영화 ‘곡성’이 개봉 10일 만에 4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역대 5월 개봉작 중 최단 기간 400만명을 돌파했음은 물론 ‘국제시장’과 ‘광해, 왕이 된 남자’ 등 다른 천만 영화보다 더 빠른 기록이라고 한다.

특히 제69회 칸 영화제에서 공식 프리미어 스크리닝 이후 전 세계 언론과 평단의 찬사가 쏟아지며 뜨거운 화제를 모으고 있다. ‘곡성’은 외지인이 나타나면서 시작된 의문의 사건과 미스터리하게 엮인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영화와 함께 유근기 곡성 군수가 쓴 신문 기고문(‘곡성(哭聲)’과 다른 ‘곡성(谷城)’이야기)이 잔잔한 감동을 불러일으키며 전국적 화제로 등장했다. 이 글은 영화 개봉을 앞둬 전남일보에 게재됐는데, 입소문을 타고 번지며 그의 ‘아낌없는 고향사랑’에 진심어린 박수를 보내고 있다.

‘곡성’이 소란스럽다로 기고문은 시작된다. 지역의 이름과 영화 이름의 소리가 같은 것이 우연인지 의도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일부 주민들의 ‘설마’ 하는 우려에 우리 군에 대한 이미지에 오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제작사측에 군(郡)의 입장과 요구사항을 전달했다.

그 결과 영화 포스터에 ‘곡성’이라고만 됐던 것에 한자를 병기해 ‘곡성(哭聲)’으로 표기하도록 했다. 영화 상영시 자막으로 ‘본 영화 내용은 곡성지역과는 관련이 없는 허구의 내용’임을 내보내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여기까지는 그렇고 그런 단순한 이야기다. 하지만 반전(反轉)은 다음부터다. “‘우려’를 뒤집어 생각하면 ‘기회’의 순간이 온다. 1991년 일본의 아모모리현(縣) 사과농장은 태풍으로 90%에 달하는 낙과 피해를 입었다. 모두가 망연자실했다. 위기의 순간에 아오모리현에서는 10%의 남은 사과를 태풍에도 떨어지지 않는 ‘합격사과’로 마케팅 했다. ‘합격사과’는 다른 사과보다 10배 이상 비싼 가격에 팔아 엄청난 매출을 기록했다”고 예를 들었다.

그러면서 “우리 민족은 낙천적이다. 우리의 고전을 살펴보면 부조리한 현실을 그릴 때도 비장함보다 해학(諧謔)으로 엮어내곤 했다. 영화와 우리 지역이 무관하다고 아무리 주장한들 사람들의 머릿속 연상마저 막을 길은 없다. 우리 민족의 낙천성을 믿고 역발상을 통해 (전남) 곡성군의 대외적 인지도를 높이는 것이 남는 장사다.”

기고문은 유려(流麗)한 문장으로 이어진다. “영화를 본 많은 사람들이 우리 군을 찾아 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초록 잎의 발랄함과 갈맷빛 사철나무의 들뜨지 않는 엄정함에 감탄할 수 있다면 우리 곡성에 올 자격이 충분하다. 유리창에 낀 성에를 지워가며 그리웠던 사람들을 그려본 사람이라면 곡성에 와야 한다.”

“봄날의 곡성은 아침이면 김승옥 작가의 ‘무진기행’에서 표현한 대로 ‘피부에 탄력을 주는 정도의 저온’으로 상쾌하다. 해가 산머리 위로 오르면 따스한 봄볕은 어느새 새벽의 기운을 물리치고 섬진강 바람을 타고 여기저기 온기를 나눈다.<중략> 곡성은 길의 고장이다. 하늘 닮은 섬진강은 쉴 새 없이 흐르면서도 속도로써 우리를 재촉하지 않는다. 길과 길이 만나는 곳에서는 사람도 서로 만나 소담한 마을이 만들어지고, 마을마다에는 전설처럼 전해지는 우리네 이야기가 있다.”

유 군수의 글은 다음과 같이 끝을 맺는다. “곡성(谷城), 50여 년간 부르는 이름이지만 여전히 촌스럽다. 우리네 부모들의 골짜기 같은 주름을 옛날처럼 닮았다. 세련미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그 이름이 투박하다. 그 속에서 따뜻함을 느끼는 이라면 태어난 곳과 상관없이 곡성은 누구에게나 마음의 고향이 될 것이다….”

일부의 우려대로 이 영화는 자칫 지역의 이미지에 치명타를 가할 수도 있다. 하지만 곡성군은 야단법석을 떠는 대신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감성적으로 호소했다. ‘발상(發想)의 전환’ 없이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이 글을 군수가 직접 썼거나 아니면 누군가가 대필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글 속엔 곡성에 대한 진하고 애틋한 사랑이 듬뿍 담겨 있다. 더욱이 봄날의 곡성이나 우리를 재촉하지 않는 하늘 닮은 섬진강 등, 유려한 필치로 그려간 곡성의 모습은 한 폭의 풍경화를 연상케 한다. 그리하여 우리로 하여금 곡성으로 달려가고픈 마음을 진정키 어렵게 만든다.

유근기 같은 군수(郡守)를 지닌 곡성군민은 그 자체만으로도 행복할 것 같다. 그렇다면 우리는 …?

올 여름 휴가철에 필자도 꼭 곡성을 찾아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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