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實學派 거두 연암 박지원
“옛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 창조
 버릴건 버리고, 지킬 건 지켜야”

“제주 전통문화도 ‘법고창신’을”
주강현 교수·박찬식 박사 주장
“耽羅문화, 민족문화 부흥 단서”

법고창신(法古創新), ‘옛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 조선 후기 최고의 문장가였던 연암(燕巖) 박지원이 제자인 박제가의 부탁을 받고 써 준 ‘초정집(楚亭集)’의 서문에 나오는 말이다.

“법고자(法古者) 병니적(病泥跡), 창신자(刱新者) 환불경(患不經), 구능법고이지변(苟能法古而知變) 창신이능전(刱新而能典)”

이를 풀이하면 다음과 같다. “옛것을 본받는다는 자는 과거의 흔적에 얽매이는 문제가 있고, 새것을 만든다는 자는 규칙을 지키지 않는 문제가 있으니, 진실로 옛것을 본받으면서도 변화할 줄 알고 새것을 만들면서도 법도에 맞아야 한다.”

옛것 중에 버려야 할 것과 살려야 할 것을 구분하고, 새것 중에 살릴 수 있는 것과 살릴 수 없는 것을 구분해서, 버릴 건 버리고 지킬 건 지키는 것이 바로 연암 박지원(朴趾源)의 ‘법고창신’이다.

민속학자이자 이 시대 대표적인 지식노마드(nomad: 유목민)인 주강현 제주대 석좌교수가 ‘법고창신’을 들고 나섰다. 제주문화예술재단(이사장 현승환) 주관으로 지난달 30일에 열린 ‘문화예술의 섬 제주, 무엇으로 만들 것인가’란 도민 대토론회를 통해서다.

이날 ‘제주전통문화의 법고창신’을 주제로 발표에 나선 주강현 교수는 “제주 전통문화를 현대적 시각에서 재조명해 지속가능한 전통문화 가치를 창출해 나가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리고 그 바탕엔 옛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는 연암 박지원의 ‘법고창신’ 정신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정체성(正體性) 있는 변화’가 바로 그것이다.

주 교수는 아무리 전통이 좋더라도 전혀 새롭지 않고, 새로운 것이 좋더라도 뿌리가 없는 것은 안 된다고 말했다. 결국 ‘법고창신’ 하지 않으면 그 문화는 멈춰버린다. 법고창신 없는 전통문화는 ‘죽음의 문화’라는 게 주 교수의 주장이다.

그는 급증하는 관광객과 제주로의 회귀(回歸) 붐, 전 세계적인 ‘에스닉(ethnic: 토속문화) 붐’ 등의 추세를 예로 들며 제주 전통문화의 가능성을 높이 평가한다. 반면에 ‘무조건 큰 것이 좋다’는 식의 슈퍼 콤플렉스를 경계하고, 전통문화의 지적소유권과 불변성(不變性) 등에 대한 낮은 도민 인식엔 우려를 표명했다.

예컨대 바람이 센 제주에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는 것을 비롯해 대형마트 등의 제주 잠식은 슬로푸드를 지향해야 할 제주의 성격과 맞지 않다는 것. 향토문화의 지적소유권도 도민들에게 너무 익숙하다보니 소중한 가치가 덜 느껴지는 것이라고 평한다.

주 교수는 “지금의 제주신방 본풀이가 20년 전 제주신방 본풀이와 똑같을 이유는 없다”며 “변화한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전통문화는 낡은 방식이다. 모든 문화는 변화한다는 원칙을 인정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정체성을 가진 제주문화 본향(本鄕)’으로서의 전통문화를 챙겨야 한다는 주장에 다름 아니다.

이 같은 의견엔 박찬식 박사(제주발전연구원 제주학연구센터장)도 동조한다. 박 센터장은 ‘제주전통문화 가치의 현재적 활용 방안’을 통해 “전통문화는 현재적 타당성을 획득할 때 그 가치가 계승된다”고 밝혔다. 전통문화를 활용하기 위해선 ‘전통의 현재적 재창조(再創造)’가 이뤄져야 하고, 스토리텔링을 성공적으로 이뤄내기 위해서는 과거를 ‘지금’ ‘여기’의 문화와 감각 및 정서, 일상과 연결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박 센터장은 21세기 문명의 위기와 신자유주의의 폐해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으로 ‘인문학의 부활’(과거 文·史·哲의 복합 정신이 재생된)을 꼽았다. 특히 제주 전통문화(탐라문화)에는 한국 문화의 얼과 숨결이 남아 있다고 강조한다.

그에 의하면 ‘탐라(耽羅)문화’는 주변지역과의 교류와 갈등, 외부에 대한 순응과 저항으로 점철된 탐라역사를 토대로 한 문화를 일컫는다. 이 문화를 이루는 다섯 요소인 신화(神話)와 굿, 제주어(濟州語)와 해녀, 말(馬)은 탐라문화의 특성(특수성·보편성·원형·연관성)을 골고루 갖춘 대표적 브랜드로 세계적인 가치를 지닌다고 평가했다. 따라서 ‘잠자는 탐라문화’를 깨우는 것은 민족문화를 부흥시키는 단서가 될 것이라고 확언한다.

주강현 교수와 박찬식 박사의 주장은 연암 박지원의 ‘법고창신’과 맥이 닿는다. <연암집> 권1 ‘초정집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진실로 옛것을 본받으면서도 변할 줄 알고, 새것을 창안해 낼지라도 능히 전아(典雅:단정하고 우아함)할 수 있다면 금문(今文)이 고문(古文)과 같아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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