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7월부터 예정대로 강행
종일·맞춤반 구분 선별적 지원
“현실 간과한 정책” 반발 잇따라

‘사실상 맞벌이’ 등 逆차별 우려
오락가락 정부에 비판 쏟아져
‘갈등 골’ 깊기 전 보완책 마련을

박근혜 대통령은 “맞춤형 보육은 합리적인 원칙대로 가야 한다”며 예정대로 7월 1일부터 시행할 뜻을 강하게 드러냈다. ‘김해 신공항’ 발표로 최악의 상황을 넘긴 직후다.

매일경제가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도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매경은 일반 국민 73%가 ‘맞춤형 보육’에 찬성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전업주부(專業主婦) 57%가 맞춤형 보육정책에 반대 의사를 표명한 것은 애써 무시했다. 그러면서 맞춤형 보육 반대가 찬성보다 많았음에도 불구 전업주부 80% 가까이가 하루 6~7시간이면 충분하다고 답한 상황을 의미 있게 봐야 한다며 여론을 호도하고 있다.

물론 ‘보편적 복지’가 능사(能事)는 아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전 계층에 종일 무상보육을 실시하는 나라를 찾아보기는 어렵다. 대부분 취업 여부나 소득 수준, 자녀 수 등에 따라 차등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정부의 정책은 우리 가정의 현실이나 보육 현장을 간과(看過)한 측면이 많다. 맞춤형 보육은 원아 가정을 크게 맞벌이 가구와 외벌이 가구로 구분하고 있다. 맞벌이(종일반)는 기존대로 오전 7시 30분부터 오후 7시 30분 사이 아이를 맡길 수가 있는 반면 외벌이(맞춤반)는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만 무상 보육을 제공받는다. 그 이상 초과된 시간에 대해서는 돈을 더 내야 한다.

문제는 융통성 없이 일률적으로 기준을 정함으로써 역(逆)차별 등의 부작용이 발생할 여지가 크다는 점이다. 예컨대 A씨의 경우 어려운 가정을 돕기 위한 일환으로 취업을 위해서 공부하고 있는데 외벌이로 분류돼 혜택에서 제외된다. 시간제 일을 하는 B씨도 ‘사실상의 맞벌이’지만 고정된 일자리를 갖지 못해 정부가 원하는 서류를 증명해내기 어렵다.

가장 큰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예상되는 계층은 ‘기타 돌봄이 필요한 가정’이다. 사실상의 이혼이나 조손(祖孫) 가정 등은 법적인 상태와 실제가 다른 경우 혜택을 받을 수가 없다. 정규직이 되지 못한 비정규직의 설움과 어쩔 수 없이 손자 손녀들을 돌봐야 하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시름이 더욱 깊어지는 이유다.

맞춤형 보육의 부작용(副作用)은 현장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어린이집 교사들은 “보건복지부의 맞춤형 보육은 재정 절약에만 초점을 두고 있을 뿐 아이들을 위한 정책은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10년 넘게 어린이집을 운영하고 있는 한 원장은 “아직 정식 지침이 내려온 것은 아니지만 정부의 안을 보면 맞춤반 아이들의 간식 횟수를 2회에서 1회 이상으로 줄이도록 돼 있다”고 말했다. 지금은 오전과 오후 두 번 간식을 주고 있는데 한 번으로 줄이면 아이들은 낮잠에서 깨어난 후 배고픈 상태로 집에 가야 된다. 종일반 아이들은 눈을 뜨자마자 친구들을 보내게 되는 셈으로 원치 않은 상처를 서로가 받을 수도 있다.

차량 운행 횟수 증가에 따른 동승교사 문제 역시 고스란히 보육의 질(質) 저하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하루 1회 더 늘어난 차량 운행을 위해 따로 교사를 채용할 수는 없다는 것. 때문에 교사들이 번갈아 맡을 경우 담임이 자리를 비운 반과 그 담임을 대신하는 다른 반 아이들까지 질 낮은 보육을 제공받게 된다는 것이다.

정부의 오락가락 정책에도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2012년 도입된 누리과정은 대한민국의 모든 영·유아에게 ‘동등한 수준’의 교육과 보육서비스를 제공하는 ‘평등(平等)’에 중점을 두고 있다. 이에 반해 맞춤형 보육은 각 가정의 상황에 따라 차이를 두겠다는 선별적 ‘차등(差等)’ 지원의 논리를 내세운다.

국회 입법조사처가 최근 보고서에서 “ 제도 시행 이후 형성되는 종일반과 맞춤반, 가정양육수당의 삼중 구조가 정규직과 비정규직 여성, 전업주부 간 형평성 논란을 일으킬 수 있다”고 우려할 정도다.

취업 여성을 지원하는 것은 일과 가정 양립(兩立) 차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하지만 일을 하고 싶어도 기회가 없거나 임신·출산·육아 등으로 노동시장에서 이탈된 여성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줄 수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주부들이 ‘전업맘 워킹맘 갈등 조장하는 맞춤형보육 결사 반대’란 피켓을 들고 시위(示威)에 나선 이유이기도 하다.

‘보편적 복지’의 폐해를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러나 이번 맞춤형 보육은 자칫 어려운 처지에 놓인 사람들을 더욱 소외시킬 소지가 있다. 갈등의 골이 깊어지기 전에 서둘러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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