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우병 파동’ 상징 대표적 怪談
2016년 여름 ‘사드’로 재연
“소크라테스도 괴담의 희생양”

불확실한 세상에 불신 싹터
정부 소통 경시가 禍 불러
“해법은 정확한 정보제공 뿐”

‘뇌숭숭 구멍탁’. 지난 2008년 ‘광우병 파동’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괴담(怪談)이다. 미국산 수입 쇠고기를 먹으면 ‘뇌(腦)에 구멍이 숭숭 뚫려서 죽는다’는 이 말은 삽시간에 들불처럼 전국으로 번졌다.

중학생들이 죽고 싶지 않다며 거리로 쏟아져 나오고, 아줌마들도 유모차를 밀며 이 대열에 합류했다. 젊은이들은 붉은 마스크를 쓰고 결연한 표정으로 청와대 진격을 외쳤다.

급기야 이명박 대통령이 사과성명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그 후 사태는 서서히 진정됐지만 ‘광우병(狂牛病)’이란 이름과 그 공포는 아직도 국민들의 마음 속에 깊이 각인되어 있다.

그로부터 8년이 흐른 2016년 여름, 미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를 둘러싼 ‘사드 괴담’이 급속 확산되고 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돌기 시작한 괴담은 사드 전자파가 불임(不姙)의 원인이 되고 암에 걸릴 확률도 높아진다는 근거 없는 소문들이 주를 이룬다. 심지어 유명한 성주 참외에는 ‘사드 참외’란 별명까지 붙었다.

이 같은 ‘괴담’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와 궤를 같이 한다. 문명의 발상지라는 고대 그리스에도 괴담은 존재했다. 위대한 철학자이자 아테네의 현자(賢者)인 소크라테스도 결국은 괴담의 희생자였다.

“너 자신을 알라”며 신탁(神託)을 거부하고 지혜와 진리 추구를 통해 무지(無知)를 깨닫도록 설파한 소크라테스는 일부 세력에겐 ‘위험한 자’였다. 젊은이들은 그를 추종했지만 시민들은 젊은이를 타락시키고 국가를 전복시킬 수 있는 위험 인물로 단정했다. 끝내 이 위대한 철학자는 고발을 당했고, 제비뽑기로 선정된 배심원 500명의 투표 결과는 340대 160. 목숨을 구걸하면 살 수도 있을 터인데, 진리만 고집하는 그에게 시민들이 내린 것은 바로 독배(毒杯)였다.

괴담의 또 다른 이름은 ‘음모론’이다. 그 대표적인 게 ‘드레퓌스 사건’이다. 1894년 프랑스 육군참모부가 파리 주재 독일대사관 우편함에서 편지 한 장을 몰래 입수하면서 이 사건은 시작된다. 편지에는 국경수비대와 포병대의 정보 등 프랑스의 군사기밀이 담겨 있었다.

당시 반(反)유대주의자였던 드 클랑 중령은 필적이 비슷하다는 이유만으로 유태계 장교인 드레퓌스 대위를 반역죄로 기소했다. 드레퓌스가 범인으로 드러나면 ‘배신자로 인해 프랑스가 전쟁에 졌다’는 국민의 믿음을 증명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재판은 프랑스 전체의 관심사였고 군중은 사형을 외쳤으며, 드레퓌스에겐 만장일치 유죄가 선고됐다.

자칫 역사 속에 파묻힐 뻔 했던 이 사건은 피카르 중령의 고군분투로 진범이 밝혀지면서 반전(反轉)을 맞는다. 에밀 졸라가 신문에 게재한 그 유명한 명문(名文) ‘나는 고발한다’는 사건의 방향을 뒤집는 기폭제가 됐다. 국론이 분열된 가운데 수차례 항소가 이뤄졌다. 결국 드레퓌스는 12년 만에야 드디어 누명을 벗게 된다. 오늘의 프랑스를 있게 한 ‘진실의 승리’였다.

이제 다시 광우병과 사드 괴담으로 돌아가 보자. 광우병 파동 당시 정운천 농림식품부 장관은 최대 피해자 중 한 사람이다. 그에겐 ‘역적’과 ‘매국노’라는 꼬리표가 달렸다.

이로 인해 도지사 선거에서 낙선한 뒤 재수 끝에 4·13 총선에서 당선되며 다소나마 명예를 회복했다. 그는 ‘광우병 파동의 소회(所懷)’를 10주년이 되는 오는 2018년 6월 밝히겠다고 한다. 장소는 촛불집회의 성지와 같은 서울시청 앞 광장. 그가 어떤, 무슨 말을 할 것인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괴담은 인간의 불안감을 먹고 자라는 괴물이다. 불확실한 세상에서 불신(不信)은 싹트고, 사회가 위기에 직면해 질서가 동요되고 무너질 때 소문과 유언비어는 날개를 단다. 괴담의 힘은 ‘과학’이란 이름으로 포장되면 더욱 강력해진다.

예컨대 세계보건기구(WHO) 발암물질 분류기준에 의하면 전자파는 발암물질이다. 사람들은 이를 신주단지처럼 믿지만, 가솔린엔진이나 배기가스가 같은 등급에 올라 있는 것은 애써 무시하고 외면한다.

증폭되는 괴담을 해소하는 방법은 단 한 가지 뿐으로, 정확한 정보 제공이 바로 그것이다. 광우병 파동이나 사드 괴담의 공통점은 대외 협상만 중하게 생각하고 대국민 설득은 가볍게 여기는 정부의 소통(疏通) 경시에 있다. 제주의 해군기지나 제2공항 문제 등도 그 범주에 속한다. 반대하는 국민만 나무랄 게 아니라 정부부터 솔직하고 겸허하게 반성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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