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민 안중에도 없는 신라면세점
‘통관 대행’ 마저 육지부에 넘겨
일감 뺏긴 제주 관세사 한숨만

재벌 면세점 지역기여도 ‘미미’
공적재원 납부 1년 고작 3억원
‘갑질 횡포’에 적극 대응 나서야

K씨는 평생을 관세업무에 종사하다 퇴임 후 어렵게 관세사(關稅士)의 길로 들어섰다. 퇴직연금으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K씨가 관세사로 나선 것은 ‘돈’ 때문이 아니었다. 그 이면엔 관세행정의 경험을 살려 아직은 열악한 제주지역 통관업무의 전문성과 공익성을 높이는데 기여해 보겠다는 개인적 욕심이 컸다.

그러나 근래 들어 관세 부문까지 파고드는 대기업의 ‘갑(甲) 질’에 치밀어 오르는 울화를 참을 수가 없다. 이 같은 ‘갑질’의 당사자는 바로 우리나라를 대표한다는 삼성그룹 계열의 신라면세점이다. 신
라면세점은 그동안 제주지역 관세사에게 맡겨오던 통관(通關) 대행권을 지난해 갑자기 인천시에 영업등록을 한 관세사무소로 넘겨버렸다.

현행 관련법엔 통관절차는 그 지역에 영업등록이 되어 있는 전문 관세사가 대행하도록 제도화되어 있다. 한국관세사회도 자체 복무 및 윤리강령을 통해 영업등록을 한 대상지역 외 타 지역에서는 통관대행을 못하도록 관리하고 있다.

그런데도 인천지역 관세사무소는 본사는 인천에 그대로 둔 채 제주지역에 관세사 1명을 파견해 마구잡이 영업을 일삼고 있다. 불법은 아닐지라도 시장 질서를 어지럽히는 엄연한 편법(便法)이다.

신라면세점이 어떤 이유로 통관 대행권자를 바꿨는지는 알 수 없으나 제주에서 영업을 하며 막대한 이득을 취하는 입장에서 정도(正道)는 아니다. 그것이 설혹 사소한 비용차이라면 더욱 그렇다.

면세점은 ‘황금알을 낳은 거위’라 불린다. 제주지역 면세점 매출은 2013년 8966억원에서 2014년 1조207억원, 2015년 1조1726억원으로 해마다 가파른 신장세를 보이고 있다.

이에 힘입어 재벌그룹인 신라·롯데면세점의 매출액도 덩달아 성장세를 이어갔다. 양 면세점의 매출액은 2013년 5106억원에서 2015년 6294억원으로 껑충 뛰었다. 최근 3년간 이들 면세점의 총매출액은 무려 1조7531억원에 달한다.

하지만 신라·롯데 면세점의 지역사회 기여도는 아주 미미하다 못해 스스로도 민망할 정도다. 양 면세점이 지난해 공적재원(公的財源)으로 납부한 특허수수료는 모두 합쳐 고작 3억1400만원에 불과하
다. 이는 전체 매출액의 0.05% 수준이다.

면세사업의 경우 정부로부터 관세 및 부가가치세 등을 면제받는다. 또한 지자체 차원의 관광객 유치정책 수혜도 부여받는 등 ‘땅 짚고 헤엄치는 식’ 영업으로 자기네 배를 불리우고 있다.

이에 반해 도민들은 이로 인해 파생되는 모든 부작용을 고스란히 떠맡고 있는 중이다. 특히 면세점으로 인한 주변의 교통난은 이루 말할 수가 없을 정도다. 인근 상가들의 피해도 막심하다. 그렇다고
이들 면세점이 자신들의 이익을 제주지역사회에 환원(還元)하고 있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 제주도의 딴청 속 도의회를 중심으로 면세점에도 관광기금 등을 부과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차 높
아지는 이유다.

이번에 논란이 된 ‘관세사’가 되는 방법은 대략 세 가지다. 첫 번째가 관세사 시험에 합격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10년 이상 관세행정에 종사한 사람 중 5급 이상 공무원으로 5년 이상 재직하고 대
통령이 정하는 소정의 연수를 마쳐야 된다. 세 번째는 일반직 공무원으로 20년 이상 관세행정에 종사한 자로서 특별전형에 합격해야 한다.

현재 제주도내에서 관세사 자격을 갖춘 사람은 10여명을 웃도는데 그친다. 그런데도 시장(市場) 자체가 전국에서 가장 작아 물량이 없는 관계로 대부분 타지에 서 활동을 하고 있다.

때문에 지금 지역에는 합동관세사무소 1곳과 개인사무소에 4명의 관세사만 남아있는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졸지에 타지 관세사에 일감을 뺏긴 토박이 관세사는 일하던 사무원들을 퇴직시키며 ‘피
눈물’을 흘려야 했다.

더욱 큰 문제는 신라면세점 물량 확보로 맛을 들인 타지역 관세사무소가 JDC(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와 JTO(제주관공공사) 면세점까지 싹쓸이할 요량으로 통관 수수료 덤핑을 내세우며 들쑤시
고 다닌다 한다. 공기업인 JDC나 JTO가이런 얄팍한 수법에 넘어 갈리는 없겠지만, 제주 관세사들은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 놀라는’ 심정이다.

신라면세점에 묻고 싶다. 제주에서 큰 이득을 보면서도 지역 관세사는 배제한 채 통관 대행업무마저 육지부에 넘기는 것은, 제주도민은 아예 안중에도 없다는 뜻인가. 이렇게 마구 휘둘리는 도민들의
자존심(自尊心)을 위해서라도 제주도가 적극적인 대응에 나서길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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