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 이미지 포장된 허상
실체 드러나며 ‘사상누각’처럼 무너져
18년 정치인생 비참한 말로 예견돼

국민들 지도자 잘못 뽑아 국정 혼란
정치인 ‘콘텐츠’로 평가 사회 공감대
정책능력·비전 검증 시스템 강화 필요

밀짚모자 쓰고 논두렁에 앉아 농부와 막걸리를 마시는 박정희 전 대통령. 1960~70년대를 산 사람이라면 사진을 통해 한 번은 봤음직한 장면이다. 이 국정홍보 화보(畵報) 속 대통령은 소탈하고 친근하다. 서민풍의 모습에서 독재자의 이미지는 찾을 수 없다. 한 장의 사진은 철권통치의 실체를 가리는 데 도움이 됐다. ‘이미지 정치’가 성공적으로 작동했다.

정치인에게 이미지는 중요하다. 정치인생의 성·패를 좌우할 정도로 이미지는 정치에 있어 핵심 요소다. 유권자들은 정책보다는 이미지에 의해 후보를 선택한다. 대권(大權)을 지향하는 정치인이 좋은 이미지 창출에 골몰하는 이유다.

박근혜 대통령이 유력 정치인으로 부상한 계기는 한나라당의 2002년 대선자금 ‘차떼기’ 사건이다. 당시 박근혜 대표는 국민에게 사죄한다며 당사 등을 팔아 불법자금 문제를 해결하고, 천막당사를 운영했다. 나락으로 떨어진 한나라당을 살렸다. 그는 이 때 소중한 정치자산을 얻었다. ‘깨끗함’ ‘강력한 리더쉽’ ‘원칙과 신뢰’의 이미지가 형성된 것이다. 한 번 만들어진 이미지는 오래 갔다. 대통령 당선의 밑거름이 됐다.

그러나 이 이미지는 철저히 포장된 것이었다. 내용이 없는 허상(虛想)이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으로 박 대통령의 이중적 실체가 드러났다. 한 꺼풀 벗겨진 그의 진짜 모습은 충격적이다. 작게는 연설문에서 크게는 인사까지 강남 아줌마 최순실에게 의존해 국정농단을 자초했다. 미르·K스포츠재단 기금 출연과 관련해 재벌과 뒷거래를 한 의혹을 받고 있다. 최고의 인재를 참모로 두고도 활용할 능력이 없었다. 대면보고를 기피한 것은 지적 밑천이 들통날까봐 그런 거라는 국민적 의심이 일고 있다. 최근에는 세월호 사건 당시 아이들이 죽어 가는데 머리를 하며 시간을 허비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무능과 부패, 무책임의 종합판을 보는 듯하다.

홍준표 경남도지사는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를 두고 “이미지 정치가 빚어낸 참극”이라고 말했다. 정곡을 찌른 지적이다. 국민들은 이미지에 현혹돼 지도자를 잘못 뽑았다. 그 결과 전례 없는 국정 혼란이 빚어지고 있다. 박 대통령의 이미지는 모래 위에 지어진 누각, 사상누각(砂上樓閣) 같은 것이다. 이제 그 누각이 허물어지고 있다. 박근혜 식(式) ‘이미지 정치’가 종말을 맞고 있다. 9일 국회에서 탄핵안 가결 여부와 관계없이 그의 정치 말로(末路)는 비참할 것으로 예견된다. 박 대통령 입장에서는 18년 정치인생이 허망할 것이다. 국민을 속인 자업자득(自業自得)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실패에는 언론도 일부 책임이 있다. 그의 국정철학과 비전 검증을 제대로 않고 이미지 양산과 확산에 언론이 앞장섰다. 철저한 자기반성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이미지 정치를 부정적으로만 볼 것은 아니다. 정치가 있는 한 정치인들의 이미지 창출행위는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정책의 뒷받침이 없는 이미지 정치는 경계해야 한다. 이미지는 제시하는 비전과 정책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게 바람직하다. 이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요구된다.

요즘 인터넷에서 ‘고구마-사이다’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이재명 성남시장은 속이 시원하다는 뜻의 ‘사이다’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는 답답하다는 의미의 ‘고구마’로 불리고 있다. 문 전 대표는 지난 2일 TBS 라디오 대담에서 이 같은 지적을 하자 “사이다는 금방 목이 마른다. 탄산음료가 밥은 아니다. 고구마는 배가 든든하다”라고 응수했다. 이것도 일종의 이미지 전략이다. 국민들은 이미지 정치의 속성을 알고 냉철하게 판단해야 한다. 알맹이 없는 메시지에 속아 넘어가서는 안 된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우리 사회에 주는 교훈은 정치인의 이미지에 휘둘리지 말고 제대로 된 지도자를 선출해야 한다는 것이다. 안철수 전 국민의당 상임공동대표는 “정치인을 ‘이미지’와 ‘이벤트’가 아닌 ‘콘텐츠’로 평가하는 시대가 와야 한다”고 주장한다. 국정을 담당하려는 정치인에 대한 정책능력 검증을 강화해야 한다. 국민들도 깨어야 한다. 겉이 좋아 보이는 인물이 아니라 실제로 좋은 정치인을 뽑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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